[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설 명절을 앞두고 우려했던 물류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폭증한 택배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택배기사들은 또 다른 전쟁을 이미 시작했다. 바로 명절선물 수송전이다. 설연휴 전 마지막 주말인 6일 주문한 물건이 도착하지 않아 연신 시곗바늘을 보고 있다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 함께 따라 해보자. ‘(조금) 늦어도 괜찮아요.’ ‘택배기사님 감사해요’.
‘늦어도_괜찮아 챌린지’는 지난해 8월1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등 7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가 제안한 국민참여형 연대 운동이다. ‘늦어도_괜찮아요’, ‘택배기사님_감사합니다’ 등 문구를 택배상자에 적고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인증하면 된다.
온라인을 통해 첫발을 떼었지만 오프라인으로도 확산 중이다. 해당 문구가 적힌 스티커와 종이테이프를 집 현관에 붙이는 방식으로 택배기사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스티커 등 오프라인 응원 도구는 네이버 온라인 기부 포털 ‘해피빈’을 통해 판매되고 있으며 수익금 전액은 참여연대 등 관련 단체에 기부된다.
과로사 문제가 공론화하면서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5일 “선물이 늦어도 괜찮다고 여기자”고 당부한 데 이어 민주당은 공식 SNS계정을 통해 캠페인을 홍보하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자천타천으로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광역자치단체장들도 인증 행렬에 올라탔다.
이런 격려에 힘입어 택배기사들은 이달 1일 정점을 찍은 택배 물량을 소화하느라 바쁜 한 주를 보내고 있다. 각 택배사는 3일 반품접수를 마감했고 5일 일반 냉동·냉장 물품 접수를 일시 중단했다. 제주, 울릉도 등에 택배를 보내려면 설 연휴 이후에나 가능하다. 오는 20일은 돼야 개인 고객 상대 집화를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택배기사들이 총력전을 벌이고 있지만, 워낙 많은 물량에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익일배송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은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온라인상에는 ‘내 택배가 버뮤다 삼각지대에 빠져 있다’ ‘명절 전에 도착해야 하는 중요한 물건인데 일주일째 옴짝달짝 못하고 있다’ 등과 같이 걱정과 근심을 드러낸 글이 줄을 잇는다.
매년 명절이면 치르는 전쟁이지만, 올해는 몸 대신 마음을 담은 선물을 보내는 ‘비대면 명절 나기’가 대세가 되면서 더 심하다. 이런 흐름은 언택트(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일상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더군다나 택배기사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노사정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에서 이해관계자들이 조금씩 양보하면서 점차 이전과 같은 ‘당일배송’ ‘총알배송’은 어려워진다.
택배이용자들 역시 ‘늦어도 괜찮아’라는 마음가짐으로 달라진 세태에 적응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