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기업과 금융사 등이 해외에서 외화채권을 발행할 때 무인가 외국계IB를 발행주관사로 선정하고 있지만 이를 관리감독할 근거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현지 법인 등을 통해 주관사 업무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법에 따른 관리·감독, 과세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 질서 정립은 물론이고 정식 인가를 받고 영업을 하는 외국계IB와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용도 없고 세금도 안 내”…형평성 문제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업 라이선스 없이 한국물 발행주관 업무를 하는 곳은 10여곳으로 전체 수수료 수익의 1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가 집계한 올해 한국계 외화채권 발행은 356억달러(41조6000억원)로 지난 2012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발행주관사가 0.5%포인트 안팎의 수수료를 받고 있어 주관업무로 받는 수수료 수익만 1억7800만달러(2028억원)에 이른다. 단순히 추산해도 1780만달러(202억원)는 무인가 외국계IB의 몫이다.
대표적인 무인가 외국계IB로는 독일 코메르츠방크와 미쓰비시JFJ그룹 계열사다. 이들은 지난 5년간 매년 한국물 시장에서 주관사로 활약하고 있다. 다음 달 발행 예정인 5억 달러 규모의 한국주택금융공사 해외채권 발행 주관사단에 포함된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역시 무인가 외국계IB다.
자본금 투입과 직원 고용 등을 하지 않고도 국내 시장에서 수익을 거둘 수 있고 정부의 관리·감독에서도 자유로워 별도의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국내 기업과 금융사들도 무인가 외국계IB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뿌리는 등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해외 발행업무의 편의성 이유를 들어 이들을 선호한다.
◇규제 사각지대…관리·감독 손 놓은 정부
금융당국은 역외에서 이뤄지는 업무여서 국내법 적용을 할 수 없는데다 문제 제기 시 통상이슈에 휘말릴 수 있다는이유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세금과 관련해서는 세제 주무부서인 기획재정부도 자본시장법 시행령 예외규정 분야라며 직접적인 규제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연초에 무인가 외국계 IB에 대해 한국물 발행주관업무 등과 관련한 모니터링을 했다”며 “이들이 법 위반 사안이 있는지에 대해 꾸준히 들여다보고 관련 사안을 체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내에 이들이 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이 있어 정부가 이들을 규제하거나 제재할 방법은 없다”고 언급했다.
기재부는 발행신고 접수와 수요예측(기관 대상 사전청약) 시기 결정 등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에 필요한 행정 업무를 맡고 있다. 이들을 관리·감독할 권한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있다.
무인가 외국계IB의 영업을 규제할 방법이 없다고는 하지만 의지 자체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계 증권사 고위관계자는 “무면허 IB의 영업에 대한 위법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당국에 건의했지만 오히려 해외에 나가서 업무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며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해외채권 발행업무 시 라이선스를 보유한 자국 지점 인력과 반드시 함께하도록 관련 절차를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고 법인세율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등으로 한국법인을 운영하는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무인가 IB가 한 푼의 세금도 안 내고 운영 부담 없이 사업을 영위하는 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