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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투기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집값 방어력은 약한 서울 노원구와 세종시 등지에서 주변 시세보다 가격을 낮춘 급매물이 대거 출현하고 있다. 고강도 부동산 규제로 당장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고 전세를 통해 부족한 자금을 융통하는 것도 힘들 것으로 판단되자 이른바 ‘깡통집’(집값이 떨어져 팔아도 은행 대출금을 다 갚지 못하는 주택)부터 손절매하려는 투자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매도자와 매수자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며 보합세를 보이고 있는 서울 강남권 주택시장과는 대조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8·2 대책 발표 직전 3억 5800만원에 거래됐던 상계주공 5단지 전용면적 31㎡형은 최근 호가가 3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지하철 4·7호선 인근에 있는 주공 7단지 전용 49㎡ 역시 한때 4억원까지 호가했으나 지금은 3억 7000만원짜리 급매가 나왔다. 이런 가격 하락에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상계동 A공인 관계자는 “급매물이 쌓이면서 호가가 계단식으로 빠지고 있다”며 “자고 일어나면 떨어지는 호가에 마음이 급해진 것은 매도자”라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주(21~25일) 노원구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11% 떨어져 서울에서 가장 하락폭이 컸다.
이렇다 보니 단기간 급등한 가격만큼 8·2 대책에 따른 충격 역시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여타 지역보다 크다. 정부가 다주택자를 겨냥해 내년 4월 1일까지 조정대상지역 내 집을 팔지 않을 경우 양도소득세를 지금보다 최대 20%포인트까지 중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다주택자들은 보유 주택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존 집을 팔거나 임대주택으로 등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재건축사업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계동 아파트를 처분하려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전세가 하락했는데 대출 한도까지 줄어 ‘엎친 데 덮친 격’
지방에서 유일하게 투기지역으로 묶인 세종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입주 물량이 몰리며 전세를 통해 자금을 융통하는 것이 어려워진 데다 대출 한도도 크게 줄면서 매수세가 뚝 끊긴 것이다.
사정이 이렇자 주택을 보유하는 게 어렵다고 판단하는 집주인들이 서둘러 집을 처분하는 모양새다. 특히 분양권 시장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내년부터 투기지역 내 분양권을 전매할 경우 내야 하는 양도세가 50%로 일괄 부과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프리미엄(웃돈)을 낮춰서라도 서둘러 팔려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이 현지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 내년 1월 입주를 앞둔 중흥S클래스 센텀시티 전용 108㎡형은 대책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분양권 프리미엄이 1억원 미만을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최근 6000만원까지 내렸다. 1631가구에 달하는 힐스테이트 세종 2차 전용 84㎡ 역시 1억원 내외였던 프리미엄이 최근 7000만원으로 하락했다.
기축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세종시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꼽히는 어진동 한뜰마을 3단지 세종더샵레이크파크 전용 84㎡는 8·2대책 이전에는 5억 5000만원에 팔렸으나 지금은 4억 8000만원으로 호가가 떨어졌다.
다주택자들이 가격 방어력이 약한 주택부터 먼저 처분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현재 매도자와 매수자간 줄다리기가 팽팽한 강남권 등 서울 내 여타 지역도 영향을 받을지 주목된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앞으로의 집값 및 전셋값 향방에 따라 매수자와 매도자 간 우위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갭투자자가 많이 유입되면서 단기간에 집값이 많이 오른 곳일 수록 8·2 대책의 충격파가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