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사철 앞두고 집주인 호가 버티기
거래 줄면 매매 수요 전세로 대거 전환
내달 대출규제 시작되면 전세난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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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수유벽산1차’ 아파트. 총 1454가구에 달하는 이 대단지 아파트는 주택시장이 활기를 띠었던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매달 10건 이상 매매가 이뤄졌다. 그러나 지난 11월 25일 전용면적 84.92㎡짜리 아파트(1층)가 팔린 이후 한 달 넘게 거래가 끊겼다. 연이은 악재와 계절적 비수기까지 맞물려 주택 구매 심리가 얼어붙은 것이다.
그런데도 집주인들은 봄 이사철 이후 거래가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작년 한 해 집값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영한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를 조금도 낮추지 않고 있다. 수유동 성신공인 관계자는 “집주인들은 일단 호가를 유지하며 버텨보자는 분위기이지만 당장 다음달 대출 규제가 시작되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해도 활황을 보이던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이 최근 빠른 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거래 절벽’ 현상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계절적 비수기에 접어든 탓도 있지만 금리 인상·대출 규제 시행·공급 과잉 우려 등 잇단 악재가 시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많다.
거래 절벽 현상이 심화되면 봄 이사철을 앞두고 매매를 포기한 실수요가 전세로 대거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전셋값은 치솟고 집값은 떨어지는 이중고를 겪을 것이란 부정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매매 거래 감소세는 ‘노도강’(노원구·도봉구·강북구)으로 대표되는 강북권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전세난에 지쳐 내 집 마련에 나섰던 실수요자들이 시장 상황 악화에도 호가가 떨어지지 않자 매매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전달 하루 평균 거래량이 5.3건(월 163건)이던 강북구는 이달 2.6건(월 29건)으로 반토막이 났다. 또 서울에서 매매 거래량이 가장 많은 노원구는 24.1건(월 748건)→15.3건(월 169건), 도봉구는 10.2건(월 317건)→7.8건(월 86건)으로 모두 40%가량 줄었다.
단지 규모가 1635가구에 이르는 도봉구 쌍문동 ‘한양2·3·4차’ 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10월과 11월 거래량이 각각 21건과 12건이었으나 12월 이후 매매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16단지’아파트(2392가구)는 작년 10월엔 한 달 새 26채가 팔렸지만 12월엔 거래가 5건에 그쳤고 새해 들어선 완전히 멈췄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명동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새해 주택시장은 미국 금리 인상,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 공급 과잉 우려 등 3대 악재에다 높은 호가로 추격 매수세마저 사라져 ‘4중고’를 겪고 있다”며 “내달 대출 규제가 막상 시행되면 집값 하락과 거래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차 수요 증가로 전세난 악화 우려
거래 절벽 현상이 벌어질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매매 수요가 한꺼번에 전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2월은 새 학기 시작을 앞두고 전세 거래가 가장 활발한 시기다. 기존 전세 세입자에 매매를 고민하던 실수요가 합세하면 물량 부족으로 전셋값이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은 분석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시장 침체기였던 2013년 취득세 감면 혜택 종료로 연초부터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나 그해 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1199건에 그쳤다. 같은달 전세 거래량은 1만 2750건으로 전년 동월(8249건) 대비 54.6%나 늘어났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한 달새 0.45%가 올랐고, 강북·서대문·강남구 등은 평균의 두 배가 넘는 1% 가량 뛰어올랐다. 당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가재울 센트레빌’ 전용 84.97㎡짜리 아파트는 2012년 12월 2억 5000만원에 전세 계약됐지만 2013년 1월엔 2억 7000만원으로 한달 새 2000만원이 올랐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아파트 입주 물량이 어느 정도 확보되는 경기도이나 지방과 달리 서울은 전세난의 숨통을 틀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며 “정부는 가계 부채 급증을 막으면서도 주택 거래 절벽도 차단할 수 있는 묘안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