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 되살아난 ‘강남불패' 신화

  • 등록 2015-12-01 오전 5:29:30

    수정 2015-12-01 오전 5:29:30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완전히 깡촌이구만, 말죽 쑤는데 어디 있어?” 영화 ‘강남 1970’에서 주인공 친구로 나오는 창배(한재영)가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 띄우기 작전에 투입된 직후 현장을 둘러보고 내뱉은 첫 마디다.

영화의 배경이 된 ‘말죽거리’는 지금의 서울 양재역 네거리 일대다.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70년까지도 이 곳 땅값은 3.3㎡당 6000원 선이었다. 40년이 훌쩍 넘은 지금은 1만배 이상인 3.3㎡당 6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강남 개발 프로젝트는 ‘강남 불패’ 신화를 낳았다. 땅값과 집값이 계속 오르자 “강남 부동산에 투자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 나온 말이다. 하물며 ‘장화 신고 들어가도 구두 신고 나온다’는 격언이 나올 정도다.

이러한 확신을 더 단단하게 한 것은 몇 차례에 걸친 부동산시장 위기였다. 대표적인 게 1999년 외환위기다. 강남권은 대표적 부동산 투자시장이다 보니 변수에 민감한데, 국내외적 정세나 경기 흐름에 따라 변동폭도 크다. 하지만 가격 회복 속도도 빠르다보니 강남불패 신화에 대한 믿음은 더 굳건해졌다. IMF 외환위기를 겪은 후 강남권 집값은 급격히 떨어졌지만 이후 얼마 안돼 또 다시 급등했다.

노무현 정부가 급등하는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2006년 3·30대책에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 각종 규제정책을 써도 오히려 집값은 더 뛰었다. 당시에는 강남권엔 주택 공급을 확대해봐야 집값을 잡기는 커녕 오히려 더 뛴다고 여겨 주택부족으로 가격이 급등한 측면도 있다.

강남불패에 대한 확신이 커진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에서도 비슷하다. 다만 이번엔 예전보다 강남권 부동산시장 회복세가 더디였다. 강남 재건축아파트 매물에 투자했다가 은행대출 원금이 묶이면서 손해를 본 사람도 한 둘이 아니었다. 시장에선 ‘강남 불패 신화는 끝났다’는 회의론과 자성론이 함께 일었다.

하지만 이 신화는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섰다. 올해 들어 서초구 일대 재건축아파트 일반분양가가 3.3㎡당 4000만원을 넘어섰는데도 청약경쟁률이 수십 대 일에 달하고, 분양권에 웃돈이 2억원 넘게 붙은 곳이 수두룩하다. 일부에선 “역시 강남 불패 신화는 여전하다”며 부동산 회의론자들의 위기론에 코웃음을 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꺼져가던 ‘강남 불패’를 되살린 것은 누굴까? 신화란 신적 존재들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인간이 만들고 전파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강남 불패 신화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강남권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이끈 것은 정부다. 구체적으로는 부동산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경기 회복을 도모하려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이 신화를 되살렸다.

이번엔 좀처럼 살아나지 않자 임대주택 의무 건립 비율 완화, 재건축 개발에 따른 초과 이익 환수 유예, 민간 아파트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 규제를 대대적으로 풀었다. 신규 분양 주택 가격이 3.3㎡당 4000만원을 넘어서고, 서민층은 더 이상 강남에서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싸고 있지만, 여하튼 시장은 살아났다.

이를 뒤집어 놓고 생각해보면 결국 강남 불패 신화를 정부가 만들었듯, 정부의 계획에 따라 강남권 부동산시장은 다시 침체될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가격이 급등한 만큼 버블(거품)이 낄 소지가 크고, 이후 부작용도 상당할 수 있다. 세상에 영원 불변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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