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설인 무용수(사진=LG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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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벨기에의 물결’. 1990년대 안느 테레사와 얀 파브르를 시작으로 빔 반데키부스, 알랑 플라텔, 얀 라우어스까지. 이 무용스타들을 배출한 유럽의 작은 나라 벨기에는 현대무용 강국으로 우뚝 섰다. 틀에 박힌 몸짓을 거부한 독창성이 무기다. 아시아 등 이국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연극 등 다른 장르까지 끌어들여 새로움을 추구한 덕이다.
이 현대무용의 성지에서 활약하는 한국 사내들이 있다. 김설진(32)과 정훈목(35). 김씨는 2008년부터, 정씨는 2009년부터 벨기에 피핑톰무용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럽진출 1세대 무용수다. 두 사람이 둥지를 튼 피핑톰은 실험성이 높은 무용단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00년 창단해 프랑스 최고 무용상(2005),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젊은 안무가상(2007) 등을 받으며 국제적인 입지도 쌓았다.
두 무용수는 어떻게 벨기에까지 가게 됐을까. 김씨는 “2004년 한국에 내한했던 피핑톰무용단의 공연을 봤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며 “그래서 오디션을 보고 입단했다”고 말했다. “피핑톰이 아프리카에 있다면 아프리카라도 갔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농이다. 오디션은 까다로웠다. 테스트는 1주일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됐다. ‘눈 덮인 고립된 마을’ 식으로 화두를 던지면 움직임·캐릭터·이야기 등을 짜서 보여줘야 했다. 정씨는 “희소성을 강조했고 바닥 끝까지 가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캐내려 했다”고 말했다.
고된 창작과정을 거친 두 무용수는 내달 피핑톰 단원으로 국내 무대에 선다. 공연명은 ‘반덴브란덴가 23번지’(11월2·3일·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허름한 주거용 트레일러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뿌리와 문화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을 담았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1982)를 모티브로 삼았다.
김씨는 “에곤 쉴래, 클림트 등의 자화상을 보며 그 이미지를 내 몸으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라는 데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5명의 다국적 무용수와 성악가가 한 무대에 서는 형식도 특이하다. 정씨는 무대에서 김경호의 ‘금지된 사랑’도 부른다. “일단 보시라.” 정씨의 짧은 대답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 정훈목 무용수(사진=LG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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