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관료제와 집단부패

  • 등록 2013-08-08 오전 7:00:00

    수정 2013-08-08 오전 7:00:00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 공직사회의 집단 부패는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근저에는 관료제의 경직성과 폐쇄성이 자리잡고 있다. 파워풀한 권력집단은 끈끈한 동류의식으로 비리의 사슬을 공고히 한다. 무의식적 관행이라는 미명아래 자행되는 도덕적 일탈은 임계점에 이르면 결국 집단적 재앙으로 폭발한다.

공직사회가 집단 부패로 몸살이다. 원전·교육·금융·세무 등 내부의 결속력과 응집력이 공고한 집단에서 그동안 장막속에 가려 있던 비리의 고리가 하나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모피아·원전마피아 등 특정집단의 전횡에 이어 급기야 택스피아(Taxfia)의 전·현직 리더들이 등장하는 권력형 비리의 막장 드라마는 공직사회 일탈의 정점을 찍고 있는 모습이다. 대한민국 관료사회는 지위 고하 따로 없는 조직 비리, 집단 부패의 경연장이다.

관료제는 합리성을 내포한다. 대규모 집단의 이상적 조직형태다. 그러나 양날의 칼과도 같다. 합목적적으로 활용되면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 배분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적 장치다. 공적 목표를 상실하면 사적이익을 증식하는 합법적인 도구로 전락한다. 계층화와 분업화, 바로 관료제의 속성 때문이다.

계층화는 권위에 대한 맹종· 상명하복의 문화를 확산, 집단비리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관료들의 역할을 기계적으로 획정하는 분업화는 개인의 도덕적 자각을 희석하며 집단 무책임· 집단 무의식을 조장할 수 있다. “자신의 비리를 이성적으로 통제하는 대신 그 역할을 상급자에게 떠넘김으로써 각자 책임을 회피하는 꼴. ” 행정학자 랠프 헴멜은 관료제의 부패불감증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권을 다루는 공직자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신세다. 달콤한 유혹을 던지는 이해관계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재수 좋으면 담장 밖, 운 나쁘면 담장 앞마당으로 미끄러진다. 유혹에 무너지는 건 자신의 책임이지만 기저에는 자기합리화의 모순이 작동한다.

우리의 정신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좀 더 관대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이를 부도덕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자기기만·자기최면으로 규정한다. 자신을 속임으로써 비리를 저지를때 느끼는 부담을 덜 수 있고 비리가 들통나도 비난에 대응하는 방어수단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도덕적 비리가 불거질때마다 모피아도 택스피아도 예외없이 자정(自淨) 대책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반성문’으로 공직사회의 청렴도가 크게 올라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하위권, 르완다 같은 아프리카 후진국과 유사한 수준이다. 지표의 신뢰성에 의문은 들지만 그래도 관료사회의 부패수준에 대한 국민 체감수준을 일정부분 반영하는 점은 분명하다.

실용을 지향한 이명박정부는 반부패정책에 전력을 쏟지 않았다. ‘일만 잘하면 된다’며 도덕성을 결여한 공직자들을 대거 국정에 끌어들여 국민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박근혜정부도 아직까진 별반 다른 것 같지 않다. 한국형 부패방지법이 부처내 조정과정에서 전격 후퇴한 걸 보면 반부패 정책을 물정 모르는 근본주의자들의 레토릭으로만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

관료제의 폐해와 도덕적 해이가 결합된 집단부패. 이를 극복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반부패정책이 제시될 일이다. 이를 통해 리더의 자기절제를 유도하고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막스베버의 통찰대로 관료조직은 스스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를 잉태한다. 국정운영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그 신뢰는 바로 공직자의 올바른 처신으로부터 나온다. 청백리(淸白吏)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국민은 더 이상 단물에 취한 공직자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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