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회사채시장]②유동성 지원·구조조정 함께 가야

금융당국 신뢰 회복 나서..STX 등 조선 해운 건설사 구조조정 필요
단기 차환발행 대책 필요하나 시장논리 존중해야
  • 등록 2013-01-03 오전 7:40:15

    수정 2013-01-03 오전 7:40:15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새해 첫날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사상 최고가 덕에 코스피가 2030선에 올라섰다. 최근까지 2000선을 넘나들던 코스피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효과를 뺄 경우 1600선에 머문다는 분석도 나왔다. 주식시장뿐 아니라 회사채 시장에서의 양극화도 두드러지고 있다. 자본시장이 기업의 자금조달 통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기능은 거의 마비된 상태다. 2009년 중소기업은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등으로 5조 4000억 원(1.2%)을 직접 조달했으나, 지난해에는 이 규모가 7000억 원으로 8분의 1수준까지 떨어졌다. 대기업의 직접금융 조달 비중도 2009년 41.7%에서 지난해 11월 말 현재 27.5%까지 하락했다.

보다 못한 금융당국이 팔을 걷어붙였다. 금융당국은 올해 40조 원의 만기도래 회사채 중 절반인 20조 원가량이 A등급 이하로 차환발행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무너진 신뢰 회복 나서

금융당국이 회사채 시장을 전면적으로 손보겠다고 나선 것은 그동안 자본시장에 대한 무너진 신뢰회복 차원이 크다. LIG건설 기업어음(CP) 사태를 계기로 그룹의 우산을 쓴 건설사들도 망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고, 웅진그룹 사태를 통해서는 제도를 악용하는 대기업의 횡포를 맛봐야 했다. 금융당국은 웅진 사태로 최소 2조 5000억 원의 금융권 피해가 생긴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채권금리가 역마진을 우려하는 수준까지 떨어진데다 연말 북 클로징 시기와 맞물려 채권시장은 복지부동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올 초 채권시장 변화를 살피면서 필요한 맞춤대책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STX그룹과 한진중공업, 현대상선, 두산건설 등 조선, 건설, 해운업종에 집중된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동성 지원뿐 아니라 구조조정도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크레디트 연구원은 “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는 몇몇 건설사와 그룹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며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지금 회사채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STX 동양 등 선별적 구조조정 ‘필수’

최근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STX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BBB+’로 한 단계씩 또 낮췄다. STX그룹이 STX팬오션 매각을 비롯해 대규모 자구계획을 발표한 뒤라 등급 하향 조치는 더 관심을 끌었다.

한국기업평가는 “조선과 해운으로 수직 계열화된 STX 주력사들이 불황에 노출되며 그룹 위험이 주목받았다”며 “영업현금 창출력 저하, 재무부담 확대가 등급 하향의 주요인”이라고 평가했다. STX 계열사들은 이데일리의 신용평가전문가 설문조사(SRE) 결과 2009년 5월 이후 8회 연속(4년째) 워스트레이팅에 오르며 등급이 적정하지 않다고 평가받았다.

STX그룹의 계열사 총차입금은 지난해 9월 말 현재 12조 원에 육박하며, 올해 만기도래 예정인 회사채도 1조 5000억 원에 이른다. 크레디트 업계는 STX그룹의 팬오션 매각 등 자구계획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으면 워크아웃 등 추가적인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다른 크레디트업계 관계자는 “잘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이 겪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게끔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것을 빌미로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늦어질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론되는 주요 대책의 효과는?

연기금 등 투자기준 완화, 담보부사채 활성화 등 다양한 방안들이 회사채 시장 살리기 대책으로 거론된다. 이미 위기 시 도입해 효과를 봤던 대책이거나 현재 사문화된 방안들을 활성화하는 게 대부분이다. 채권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기업 살리기, 유동성 위험 완화 의지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지만, 과도한 의욕은 시장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무차별적인 기업 자금지원 등에 나서면 시장 교란이 더 극심하게 일어날 수 있어, 지원과 구조조정이 함께 궤를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동성 지원에 나서더라도 정부는 시장가격을 존중해 적정한 금리 수준을 매겨 회사채 인수 등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권혁세 금감원장은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주채권은행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금융시장은 여건이 급변하는 만큼 시장여건에 맞게 적절한 보완책을 만들 계획”이라며 “예전에 썼던 대책들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유동성 지원과 구조조정이 궤를 같이하는 게 맞다”면서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장에서 상시적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어 되려 구조조정이 너무 많이 되는 게 아닌지 우려할 수준”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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