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한 간부의 시국인식이다. 푸념 섞인 그의 말에는 정권 임기말을 맞은 관가와 관료들의 무기력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실무를 맡은 공무원들 반응도 다르지 않다. 지금 정책을 만들고, 발의를 해봐야 정권이 바뀌면 어찌될 지 모르는데 굳이 힘을 뺄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정권 말이면 반복되는 ‘학습된 무기력’의 단면이다. 공무원들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움직이지 않거나(복지부동), 눈동자만 굴리는(복지안동) 행태도 배경은 다르지 않다. 과거 정부에서 재정부가 임기말에 새해 경제운용방향을 준비해 가니, 대통령이 “다음 정부에서 다 바뀔 건데, 이런 걸 뭘…”이라고 했다는 일화는 아직도 관가에 나돈다.
공무원들이 일하기 힘든 시기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학습된 무기력을 임기말 관행으로 간주하고 아예 손놓고 가도록 놔둬서는 안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요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국정은 릴레이와 같아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그만큼 다음 정부에 짐을 지운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국정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의 자세도 그러해야 한다. 안팎으로 닥친 위기속에서 국민들 삶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공무원 월급은 그런 국민들이 꼬박꼬박 내는 세금이다. 공무원이 ‘국민의 공복’이라는 것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명제가 아니다. 학습된 무기력을 방치하는 것은 정권과 정부, 장관의 직무유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보리 기자 boris@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