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돈을 빌렸다가 원리금을 제 때 갚지 못해 부실화되는 대출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15일 밝힌 ‘국내 은행 부실채권 현황’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은행권 가계대출 중 3개월 이상 원리금을 못갚은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0.76%를 기록했다. 2006년 9월 이후 5년 9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0.5~0.6% 대에 머물던 부실채권 비율은 올들어 0.7%대로 올라선뒤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부실화의 전 단계인 대출 연체율도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가계부채는 이미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자리잡았다. 가계빚이 1000조원에 육박한 상황에서 원리금을 못갚는 대출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가계부채 문제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는 신호다. 여기에다 경기침체와 집값 하락 등으로 가계빚이 부실화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은행에서 일괄적으로 받은 집단대출의 경우 부실채권비율이 1.37%에 달해 집계를 시작 이후 가장 높았다.
가계부채가 부실화되면 은행은 막대한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고, 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면 곧바로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생계를 위해 은행빚을 끌어다 쓰는 가계는 늘어나고, 담보를 처분해도 대출 원금조차 못갚는 깡통 아파트와 상가는 속출하고 있다. 또 다중채무자나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이 떠안고 있는 부채의 질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니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대책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황이다. 오죽했으면 야당의 대권 후보가 가계부채 특별법까지 만들겠다고 나섰겠는가. 경제 이슈를 넘어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는 얘기다.
정치권과 정부, 감독당국의 역할엔 한계가 있다. 은행들이 자구 차원에서 적극적인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은행들이 연체자에 대해 신용불량자 등록과 징벌적 고금리로 대응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가계의 자산과 소득, 신용상태를 면밀하게 파악해 금리 재조정과 만기 연장 등을 통해 대출 부실화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잠재적 신용불량자들의 빚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사전채무조정 대상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금리조정 등을 노리고 고의로 연체하는 모럴해저드는 철저하게 방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