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짐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당장 한일 군사협정 국무회의 밀실 처리를 주도한 인물로 꼽히는 국무총리와 외교부 장관이 나란히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한일 군사협정 내용과 과정에 대해 국회에서 성실히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겠다던 다급했던 다짐은 해외 출장 뒤로 밀렸다.
지난달 26일 국무회의를 주재해 즉석 안건으로 올라온 한일 군사협정을 의사봉을 두드려 통과시킨 김황식 국무총리는 7일 아프리카 출장을 떠났다. 총리실 관계자는 “국가 사이의 약속이라 어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협정 체결을 담당한 김성환 외교부 장관도 11일 외교장관 회의 참석차 캄보디아로 떠난다.
‘밀실 처리’ 논란 초기 정부 수반 1, 2위인 이명박 대통령과 김황식 총리는 비공개 처리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발뺌했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네탓 공방에 여념이 없었다. 한일 군사협정 내용 제작자인 국방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부 내부의 정책 결정시스템은 작동을 멈추고 부처 이기주의만 남은 임기 말 레임덕에 허덕이는 정부 실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밀실 처리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던 청와대와 외교부는 책임자 문책에 손발을 딱딱 맞춘 양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국민이 낯설어하는 청와대 기획관, 외교부 국장에게 책임을 씌우는 것으로 논란을 축소 무마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수습에 안간힘을 쓰는 정부의 바람과 달리 한일 군사협정 논란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태세다. 국회 대정부 질의, 국정감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책임 소재가 분명한 총리, 외교 및 국방부 장관이 어떤 변명을 내놓을지, 국민을 기만한 정부의 또 어떤 새로운 거짓말이 드러날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한일 군사협정 논란’ 2라운드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