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자동차업체들의 파산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자동차업체를 파산시키는 것이 책임있는 행동이 아니라며 자동차 구제에 나선 명분을 밝혔다.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는 우선 차기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각각 94억달러와 40억달러을 지원받게 됐다. 내년초 의회가 미 재무부의 부실자산구제계획(TARP)의 잔여자금 사용을 승인하면 두 회사는 여기에서 40억달러를 추가로 받는다. 망망대해에서 익사직전에 놓인 자동차업계에 구명튜브가 던져진 셈이다
그러나 미 자동차산업이 풍랑에 휩쓸리다 기진맥진해 스스로 구명튜브에서 손을 놓게될지, 아니면 비바람을 헤치고 끝내 생존에 성공하게 될런지, 디트로이트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 부시 결정 반대편 "밑빠진 독에 물붓기"
자동차 자금지원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미국 자동차산업이 고비용의 구조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빅3 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다름없다고 믿고 있다.
특히 자동차의 품질수준이 뒤처진데다, 엄청난 규모의 의료보험 및 은퇴자연금 부담이 차량 가격에 전가돼 있어, 빅3의 경쟁력은 태생적으로 해외 브랜드에게 밀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더욱 큰 문제는 미국 소비자들의 등을 돌렸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미 자동차산업이 `노동협약`의 개선없이는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자동차노조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임금 및 복지혜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파산보호신청을 통해 회사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밥 코커 공화당 상원의원은 "누구도 위기(파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가끔은 이러한 위기가 진정한 개혁을 도모하는데 최고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코커는 미 상원이 자동차 구제법안을 무산시키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 자동차 구제 찬성론자 "메이커들의 변신노력에 가속도"
그러나 미 자동차산업이 부시 행정부의 구제자금으로 최소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외국계 브랜드와의 경쟁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이미 진행중이고, 이번 긴급자금 지원으로 메이커들의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밥 슐츠 스탠더드앤푸어스(S&P) 자동차 크레딧애널리스트는"생산능력을 줄이고 노동비용을 절감하는 등 미국 메이커들이 이전에 해왔던 것 이상의 노력을 보여줄 것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보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데이비드 콜 오토모티브리서치센터 대표는 "이번 구제자금은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아직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자금지원은 미국 메이커들이 추진하고 있는 변화에 가속도를 붙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빅3 생존 여부 향후 2년래 자동차 수요에 달렸다
부시 행정부의 자동차 구제지원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지만, 미 자동차산업이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선 지금들어간 돈 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필요하리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선 부시 행정부가 GM과 클라이슬러에 174억달러의 구제자금을 결정했지만, 빅3가 당초 지원을 요청했던 자금규모는 340억달러에 달한다. 자동차 수요부진이 지속돼 포드 마저 손을 벌리게 된다면 자동차 구제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빅3 금융회사들에 대한 구제자금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GM이 49%의 지분을 갖고 있는 GMAC의 경우엔 파산위기에 내몰리자, 재무부의 구제자금을 받기 위해 은행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마크 잔디 무디스이코나미닷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자동차 구제자금 규모는 궁극적으로 750억달러에서 많게는 125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S&P의 슐츠 애널리스트는 "빅3의 생존 여부를 지금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아마도 많은 것이 지금부터 2011년 사이의 경제상황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 판매가 지난달 26년래 최악으로 추락했기 때문에 향후 2년내 수요회복 여부에 따라 빅3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