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영민 수습기자] “봄이 왔는데 어째 거리두기 시절보다 꽃과 묘목이 더 안나가요. 올해처럼 기온이 갑자기 올라서 꽃이 다 피어버리고 싹이 올라오니까 식재 시기가 이미 지난 거예요. 식목일 대목이 무색한 거지.”
|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공판장 모습(사진=이영민 수습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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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화훼공판장)은 입구부터 만개한 꽃들이 제각각 향기를 뽐내며 흐드러져 있었다. 평일 낮 시간대임에도 홀로 혹은 가족, 연인, 반려견과 함께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형형색색의 꽃과 묘목을 구경하며 함께 웃음꽃을 피웠지만,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보기 힘들었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 돼서 큰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기온이 갑자기 큰 폭으로 오르면서 식재 시기와 손님을 모두 놓쳤다고 말한다. 실제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20도를 넘어서며 예년 기온을 10도 이상 웃도는 등 초여름처럼 포근하고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중이다.
이곳에서 8년째 묘목을 판매 중인 송모(40·여)씨는 “봄이니까 꽃을 보러 오는 사람은 늘었는데 실제로 사는 손님은 없다”며 “작년 이맘때에 비하면 30~40%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난초와 분재 매장을 운영하는 홍종욱씨도 “작년까지는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좋지 않았아도 봄이 오면 제법 팔렸는데 올해는 아니다”고 했다.
상인들은 꽃과 나무의 수요가 줄어든 원인 중 하나로 ‘날씨’를 꼽았다. 묘목은 싹을 틔우거나 꽃을 피우는 시기부터 생장을 시작하는데, 올해는 기온이 갑자기 큰 폭으로 오르면서 이 시기가 당겨졌다. 이때 나무를 옮겨심으면 빨리 고사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판매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꽃 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김순정(56·여)씨는 “올해는 예상보다 벚꽃이 일찍 폈는데 그러면 다들 꽃을 사러오기보다 꽃놀이하러 밖으로 나간다”며 “대목인 식목일이 오기도 전에 올해 꽃 장사는 이미 끝났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벚꽃은 지난 25일부터 피기 시작했다. 1922년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빠른 개화 기록이다. 꽃시장을 찾은 직장인 차미소(32·여)씨는 “꽃들이 빨리 펴 휴일에 꽃구경하러 다니느라 따로 꽃이나 식물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잘 안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강모(27·여)씨도 “꽃값이 요새 너무 비싸기도 해서 구매보다 나들이 다니며 공짜로 구경하는 게 낫다”고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구 온난화는 한두 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농가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나라에서 고부가 가치 작물을 재배·판매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식목일은 법정기념일이지만 시기를 앞당겨서 시민들이 제때 나무를 심고 농가를 찾아 소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