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이승만 전 대통령)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박정희 전 대통령)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김영삼 전 대통령)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바로 어록을 남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유명했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대표적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이 가장 유명하다. 너무 흔하게 쓰여 이제는 익숙한 ‘고사성어(故事成語)’처럼 느껴질 정도다. ‘내로남불’에 버금가는 박희태 전 의장의 유명 어록도 적지 않다. 특히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을 높이 평가했던 ‘정치9단’, 1990년 3당 합당 이후 혼란한 사회상을 비유했던 ‘총체적 난국’의 생명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정치입문 이후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다만 윤 후보가 의도한 뜻과는 전혀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청약통장 △주120시간 노동 △대구민란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도 △극빈층 자유 △부득이 국민의힘 선택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민주당은 ‘1일 1망언’이라고 혹평했다. 국민의힘은 전체 문맥을 살피기보다 일부 표현을 왜곡했다고 반발했다. 윤 후보가 여의도 정치언어에 익숙치 못하다거나 참모진의 보좌 문제라는 해석이 붙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대선후보의 말과 글은 간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족은 불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윤 후보의 메시지 전략은 실패작이다.
단순히 말실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윤 후보의 위기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구성했던 선대위는 이준석 대표의 보이콧으로 정상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가족리스크 또한 꺼지지 않은 불씨다. 26일 부인 김건희씨가 대국민사과에 나섰지만 모든 의혹이 해소된 것도 아니다. 박희태 전 의장의 어록을 빌리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지난 3월 검찰총장 퇴임, 6월 대권도전 선언, 8월 국민의힘 전격 입당, 11월 국민의힘 대선경선 승리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폭넓은 정권교체론을 바탕으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압도한 것과 비교할 때 상전벽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던가. 크고작은 실언에 지지율 격차는 조금씩 좁혀졌다. 이제는 역전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윤 후보가 ‘총체적 난국’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상황은 최악으로 흐른다. 지지율 추가 하락이 불러올 대참사다. 만일 이 후보에게 10%포인트 이상 계속 뒤진다면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후보교체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 윤 후보로서는 상상조차하기 싫은 악몽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을 뒤흔들었던 이른바 ‘후단협’ 사태의 되풀이다. 후보교체론의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희박한 가능성에도 후보교체론이 공개적으로 제기되는 순간 국민의힘은 심리적 분당 사태에 내몰린다.
돌파구는 있을까? 윤 후보로서는 연말연초를 전후로 어떻게든 반등의 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말실수 투성이의 불안한 후보가 아니라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는 믿음직한 야권후보라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윤 후보는 과연 어떠한 선택지를 꺼내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