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반 소유권 증명서라 할 수 있는 NFT는 예술 작품 등을 디지털 공간에 ‘박제’하는 효과가 있다. 이광수 한국미술협회(한국미협) 이사장은 “모든 예술품은 고유성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가치가 생긴다”며 “시각예술품은 NFT를 적용하기 가장 적합한 장르”라고 했다.
한국미협도 최근 NFT 사업을 본격화했다. NFT 플랫폼 업체인 가이덤재단과 손을 잡으면서다. 이를 통해 4만 명에 달하는 소속 작가들이 NFT 작품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한국미협이 NFT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광수 한국미협 이사장을 서울 목동에 있는 한국예술인센터에서 만났다. 1956년생인 그는 올해 2월부터 제25대 한국미협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백석예술대 교수로도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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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예술품이 될 수 있는 시대”
이 이사장은 NFT로 미술의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고 봤다. 그가 인터뷰 내내 ‘미술’이 아닌 ‘시각예술’이라는 용어를 주로 쓴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NFT를 통해 BTS의 노래 등 무형의 예술품도 시각예술품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하다못해 ‘회사 설립 이유’ 같은 것도 스토리텔링만 된다면 시각예술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예술품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NFT가 시각예술의 민주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누구나 장르를 떠나 유명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까지 미대 출신의 0.1%만이 유명 작가가 된 것이 현실”이라면서 “문화와 예술은 인류가 공동으로 향유해야 하는 가치지, 일부 자본에 의해 움직여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NFT의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 지난달 홍콩에 기반을 둔 NFT 플랫폼 업체 가이덤재단과 독점 계약을 맺으며 ‘가이덤 컨소시엄’을 꾸렸다. 가이덤재단은 음원,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NFT 사업을 펼쳐왔다. 앤디 워홀의 NFT 거래를 성사시켜 주목받은 미술품 전문 NFT 플랫폼 아띠도 컨소시엄에 합류했다.
내년 6월 ‘월드아트엑스포’ 개최 …“문화예술 올림픽”
이 이사장이 가장 관심을 쏟고 있는 건 내년 6월 여는 ‘월드아트엑스포’ 행사다. 한국미협이 IAA, 가이덤재단 등과 공동 주최하는 이 행사는 한국미협이 추진하는 NFT사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온·오프라인으로 열리며 참가 자격, 분야에도 제한이 없다. 공모전과 달리 접수비도 무료다.
사자부터 가상인간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차 예선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NFT 작품도 출품됐다. 이 이사장은 “월드아트엑스포는 한 마디로 문화예술 올림픽”이라며 “세계의 시각예술품을 한국으로 오게 만들고 싶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작가들은 참여작 중 하나를 뽑아 NFT로 발행해 판매하게 된다. 지분을 쪼개서도 판매되기 때문에 자본이 적은 사람들도 투자할 수 있다. 이번 행사로 문화·예술을 대중화시킬 뿐 아니라 투자도 쉽게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가이덤의 NFT 기술은 한 작품을 최대 1만 명이 소유할 수 있도록 지정할 수 있다고 한다.
자칫 NFT 가격 거품 논란은 없을까.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서 심사위원을 구성해온 한국미협이 관여하는 만큼 NFT 가격 거품 논란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국전은 미술 분야 신인을 발굴하는 공모전으로 약 50년간 이어져 온 권위 있는 대회다. 한국미협은 월드아트엑스포 결선이 시작되기 전까지 출품한 작가 400명의 출품작 중 각각 1점을 NFT 작품으로 지정한 뒤 300만~ 10억 원 사이의 감정가를 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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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사장은 오히려 월드아트엑스포 행사가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기존 갤러리 위주의 전시에서 탈피하고, 코로나 이후 이어지고 있는 비대면 시대에 신진 작가들이 유저들과 만날 수 있는 대회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NFT가 작가될 수 있는 길을 넓혀준다”는 생각과도 일맥상통한다. 그간 갤러리 중심의 미술품 판매는 미술품 시장 불황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미술품을 전시하고 유통하는 구조를 바꾸는 데도 일조하는 셈이다. 한국미협은 향후 메타버스 전시회까지 고려 중이다.
그는 “월드아트엑스포를 열면 전 세계 투자자들도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을 것”이라며 “첫 대회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1만 명 정도는 참여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했다. NFT 열풍으로 잠재 고객 수요는 이미 확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월드아트엑스포를 한 번만 열어도 수장되는 작품의 가치가 ‘이건희 컬렉션’만큼 나갈 것”이라며 “지자체를 통해 수장고 역할을 할 ‘엑스포 빌리지’를 5곳 정도 만들어 싶다”고 덧붙였다.
인터뷰에 동석한 조영구 가이덤재단 최고운영책임자(COO)도 “평론 등의 정보가 NFT에 함께 올라가기 때문에 투자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COO는 소프라노 조수미 씨의 친동생이다. 지난 여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은 코로나 와중에도 4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이 이사장은 “세계 시각예술인을 위한 명예의 전당을 한국에 만들고 싶다”는 꿈도 드러냈다. 그는 “내 운명을 걸고 꼭 만들고 싶다”며 “월드아트엑스포 행사 3년 차쯤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세계 미술의 날’이 제정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