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벤처, 해외 투자 유치 집중… 법인 해외 이전도 감수
최근 국내 스타트업들이 해외 투자가로부터 자금 유치에 속속 성공하고 있다. 온라인 식자재 유통 플랫폼을 운영 중인 마켓컬리 법인 ‘컬리’는 세콰이어캐피탈 등으로부터 지난해 67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올해에도 세콰이어 등에게서 다시금 1000억원 상당의 시리즈D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초 지난해 진행된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는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인 하나금융투자프라이빗에쿼티(하나PE)가 주도했지만 중간에 홍콩계 PEF 운용사 앵쿼에쿼티파트너스의 대규모 투자 제안에 상황이 급변했다. 김슬아 컬리 대표는 마켓컬리 역시 해외 진출을 위해 해외 투자가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쪽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면서 기존 투자가들과 의견 조율에 들어갔다.
결국 컬리는 구글·인스타그램 등을 키워낸 세콰이어캐피탈로부터 투자유치를 통해 자금 확보와 글로벌 네트워크 마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마켓컬리 사정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골드만삭스·맥킨지·테마섹 등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은 김슬아 대표로서는 당장의 자금 유치보다는 해외 시장 진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투자가와 손잡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자본으로부터 수월하게 투자를 유치하고자 법인을 미국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국내 벤처캐피털(VC) 세마트랜스링크가 투자한 헬스케어 장비 업체 ‘사운더블’은 투자가들과 조율을 거쳐 지난해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법인을 옮겼다. 당시 송지영 사운더블 대표는 “유망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와의 교류, 시장 규모 및 투자 유치 가능성을 봤을 때 미국의 사업 환경이 더 좋다고 판단해 이전을 결정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해외 연줄 없인 유망 기업 투자도 어려워… 역전된 ‘갑을 관계’
한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투자기관들은 해외 시장 동향을 파악하거나 현지 시장 진출 시 부딪힐 문제 등에 조언을 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글로벌 투자가들은 글로벌 시장 이해도가 높은 데다 글로벌 VC로부터 투자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후속 투자 유치가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벤처 업계에 뭉칫돈이 풀린 점도 피투자처들이 해외 자본에 눈을 돌리는 까닭이다. 한국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4조943억원 수준이던 VC 투자재원은 올해 2월 기준 24조2612억원으로 늘어났다. 4년 사이에 벤처 업계에 풀린 자금이 70% 이상 급증한 셈이다. 국내 투자 재원이 늘어나다 보니 투자 유치가 비교적 수월해졌고 스타트업들 역시 투자 유치 자체보다는 투자 유치를 통한 별도의 효과를 고려해 투자가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업계 분위기가 변모했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유망 스타트업은 향후 투자 계획 및 업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해 투자가를 선별하는 등 기존의 ‘갑을 관계’가 역전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또 다른 VC업계 관계자는 “국내 VC들도 해외 투자기관과 연줄을 설명하거나 해외 진출을 적극 도와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며 “단순히 우량기업을 발굴해 자금을 집행한다는 전략만으로는 VC시장에서 버티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