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이온킹, 브로드웨이 흥행공식 깨고 20년간 8조 매출

처음부터 달랐던 디즈니, 8.5조원 사상 최대 흥행 돌풍
라이온 킹 수입, 스타워즈 시리즈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아
친숙한 인기 애니매이션 줄거리에 색다른 연출 조합
수백억 제작비로 화려한 무대..브로드웨이 흥행공식 변화
  • 등록 2017-12-04 오전 6:00:00

    수정 2017-12-04 오전 6:00:00

/뮤지컬 ‘라이온 킹’ 홈페이지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지난달 13일 디즈니의 뮤지컬 ‘라이온 킹’이 20주년을 맞았다. 라이온 킹은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역사를 다시 쓴 작품이다. \1997년 11월13일 막을 올린 라이온 킹은 지금까지 19개국에서 9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관람했다. 그간 벌어들인 흥행 수입이 무려 79억달러, 우리 돈으로 8조5000억원이 넘는다.

이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부터 31년째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지만 흥행수입은 56억달러(약 6조원)다. 11년 늦게 시작한 라이온 킹보다 오히려 작다. 영화와 비교해도 라이온 킹의 기록은 압도적이다.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의 수입이 28억달러다. 뮤지컬 라이온 킹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스타워즈 시리즈 영화 9편의 흥행수입을 모두 합해도 70억달러 정도다. 뮤지컬 라이온 킹 하나에 못 미친다.

20년 전 라이온 킹 초연 무대에 올랐던 린디위 드라미니(49)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에 청중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정말 모를 겁니다. 그 에너지는 상상했던 걸 완전히 넘어서는 것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르게

역대 뮤지컬 및 영화 흥행 기록, 단위:억달러
디즈니는 브로드웨이의 이단아였다. 디즈니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뮤지컬로 제작한다고 했을 때 브로드웨이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당시 브로드웨이는 영국산 작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 당시 유행하던 영국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은 모두 문학 작품이나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했다. 예술성이 매우 높았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은 예술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어린이용 만화영화를 뮤지컬로 만든다는 건 당시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게다가 라이온 킹에서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밀림을 배경으로 사자와 하이에나, 원숭이, 미어캣, 멧돼지 등이 주인공이다. 디즈니 티어트리컬 프로덕션의 책임자인 토마스 슈마허는 “당시 라이온 킹을 뮤지컬로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내가 들어본 얘기 중에 최악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디즈니는 한술 더 떴다. 뮤지컬 라이온 킹의 연출자로 영화감독 줄리 테이머를 선택했다. 테이머는 뮤지컬을 한 번도 연출해 본 적이 없었다. 슈마허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어요. 테이머와 같이 하기로 했다니까, 브로드웨이 사람들이 우리가 쫄딱 망할 거라고 하더군요. 당시에는 어디 한번 어떻게 되는지 보자는 심정이었어요.”

연출자 테이머도 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테이머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정말 놀랐어요. 뮤지컬은 전혀 관심을 둔 분야가 아니었거든요. 전혀 다른 세계였어요. 사실 브로드웨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요. 브로드웨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라이온 킹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 이야기가 마음에 들더군요. 그래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느낌이 들었어요. ”

테이머는 아프리카의 정글 속 동물들을 무대 위에 구현하기 위해 아시아의 인형극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왔다. 가면을 이용한 것이다. 뮤지컬 ‘캣츠’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의상과 분장만을 이용하지만, 라이온 킹은 머리 위에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동물 모양의 가면을 달았다. 캐릭터가 어떤 동물을 상징하는지 보여주면서도 배우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는 방식이다.

실험은 대성공을 거뒀다. 라이온 킹은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과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6개의 토니상을 수상했다. 테이머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상 최초의 여성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빅데이터 활용..주먹구구 마케팅은 없다

디즈니의 뮤지컬 ‘라이온 킹’을 공연하고 있는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의 민스코프극장 /AFP
라이온 킹의 성공 뒤엔 디즈니의 마케팅의 역할이 크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제작자인 폴 리빈은 “모든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가격 전략을 구사하지만, 라이언 킹의 전략은 다른 뮤지컬을 압도했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디즈니의 마케팅은 확실히 달랐다.

기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가격은 그야말로 들쭉날쭉하다. 보통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티켓 가격은 80달러~140달러 수준이지만, 인기가 높을 땐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인기 뮤지컬인 해밀턴의 경우 연말 1층 오케스트라 좌석 한장 가격이 3500달러(약 370만원)에 달한다.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러다 인기가 시들해지고 객석을 채우지 못하게 되면 표가 할인판매소에 풀린다. 티켓 가격은 20달러~30달러까지 떨어진다. 인기 있을 때 최대한 뽑아내고 나중에 헐값이라도 받아서 좌석을 채우는 전략이다.

라이온 킹의 제작사인 디즈니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일단 좌석 가격의 상한선을 설정했다. 아무리 성수기여도 티켓 가격이 227달러(약 24만원)를 넘지 않도록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헐값 판매도 전혀 하지 않는다. 너무 비싸지도, 너무 싸지도 않은 가격으로, 디즈니는 라이온 킹의 전용 공연장인 브로드웨이 민스코프극장의 1300석을 꽉 채운다.

디즈니가 달랐던 건 빅 데이터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뮤지컬을 관람한 수천만명의 관객들의 유형을 컴퓨터로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성수기와 비수기, 성수기와 비수기 사이 기간 등을 세분화해 가격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디즈니는 좌석마다 가격이 모두 다르다. 기존 브로드웨이의 관행은 특정 구역 내 좌석은 모두 같은 가격으로 책정됐다. 오케스트라석은 모두 200달러라면 2층인 메자닌 구역은 모두 100달러를 적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디즈니는 같은 구역 내에서도 좌석마다 다른 가격을 책정했다. 관객이 컴퓨터를 통해 원하는 자리를 직접 고를 수 있도록 한 것도 디즈니가 처음 시도했다. 초고가도 없고 헐값도 없지만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가격을 조정해 수익을 극대화했다. “다른 극장들은 엄두도 못 낼 수준”이라는 게 브로드웨이의 평가다.

쉽고 친숙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뮤지컬 라이온 킹 홈페이지
디즈니 콘텐츠의 장점은 쉽고 익숙하다는 것이다. 디즈니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줄거리를 그대로 차용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디즈니가 만든 뮤지컬을 보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관객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게다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이미 뮤지컬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이미 다양한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토리의 70%가 음악을 통해 전달된다는 분석도 있다. 디즈니의 창업자 월트 디즈니가 광적인 뮤지컬 팬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악까지 마련돼 있는 콘텐츠는 뮤지컬로 쉽게 이전된다. .

어른이 좋아하지 않는 ‘어린이용 콘텐츠’라는 한계는 막대한 자본력으로 극복했다. 최대 흥행작 라이온 킹의 경우 뮤지컬 제작비가 2000만달러(약 216억원)에 달했다. 브로드웨이 역사상 없었던 숫자다. 라이온 킹은 막강한 디즈니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이는 디즈니의 뮤지컬이 어린이용에 머무르지 않고,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즐기는 가족용 뮤지컬의 대명사로 바뀌는 기반이 된다.

물론 모든 디즈니의 뮤지컬이 성공한 건 아니다. 2007년 1400만달러를 들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타잔’은 15개월 만에 막을 내렸고, 2009년 선보인 뮤지컬 ‘인어공주’도 22개월 공연에 그쳤다. 라이온 킹을 만든 줄리 테이머가 연출한 뮤지컬 ‘스파이더맨’도 큰 반향을 끌어내진 못했다.

하지만 디즈니 뮤지컬의 성공 공식을 적용한 작품들은 브로드웨이의 다른 뮤지컬에 비해 흥행 확률이 높다. 내년 2월 선보이는 디즈니의 새 뮤지컬 ‘프로즌(겨울왕국)’도 디즈니 특유의 화려한 무대를 꾸민 것으로 전해졌다. 시사회에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프로즌 시사회에 다녀온 뉴욕 맨해튼의 티켓판매회사 ‘오쇼’의 조안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과연 가능할까 생각하면서 관람했는데,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여주인공 엘사가 마법으로 얼음 궁전을 만드는 장면을 무대에 구현했더라고요. 다들 디즈니는 역시 디즈니라고 감탄했어요.”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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