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지금이라도 ‘리바비린’ 복제약(제네릭)을 만들면 매출에 도움이 될까요?”
국내제약사 한 개발담당자가 털어놓은 고민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치료에 항바이러스제 ‘리바비린’이 사용된다는 소식에 이제라도 제네릭을 개발하면 수혜를 입을수도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리바비린은 메르스 치료 효과를 인정받지는 않았지만 의료진이 치료에 사용하는 다양한 약물 중 하나다. 기존에는 리바비린은 시장성이 높지 않아 제네릭을 만든 업체는 3개에 불과했다.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치료제를 만든다는 소식이 퍼지면 주가가 오를 수도 있다는 속내도 분명 있는 듯하다.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 치료제 ‘타미플루’가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제약사 10여곳은 앞다퉈 타미플루 제네릭 개발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타미플루 제네릭 개발 업체들은 ‘신종플루 테마주’로 엮이면서 주가가 폭등했다. 6년이 지났지만 타미플루 제네릭 허가를 받은 업체는 3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업체들은 실제로 제네릭 개발을 진지하게 시도했는지도 의문이다.
안타깝지만 이게 제약사들의 현실이다. 적은 비용으로 단기간내 수익을 낼 만한 분야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염진통제 ‘쎄레브렉스’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오늘(12일)부터 제네릭 판매가 가능해졌는데, 무려 81개 업체가 제네릭 허가를 받았다. 연 매출 700억원 시장에 웬만한 제약사들은 모두 가담한 셈이다.
이에 반해 메르스 공포가 전국으로 확산됐는데도 어느 업체도 치료제나 백신 개발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메르스 여파로 폐렴구균 백신수요 증가 움직임이 있지만 국내제약사는 들러리다. 폐렴구균 백신은 다국적제약사 4곳만 보유 중이고 국내업체는 판매만 대행한다.
물론 제약사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다보니 단기 수익에 목메는 현상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신약 개발을 위한 캐시카우를 마련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국민의 불안감 커지는 상황에서 든든한 제약사 한 곳 없다는 현실이 애석할 따름이다.
일부 제약사 오너들은 매일 새로운 제품을 발굴하라며 개발담당자들의 숨통을 조이곤 한다. 실적 부진을 개발부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제약업계의 초라한 경쟁력이 그동안 단기수익만 추구한 결과라는 사실을 여태 깨닫지 못한 건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