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정부가 정책 목적으로 내세운 주택시장 활성화와는 상관없이 확대된 주택담보대출이 자영업자 사업자금 등 생활자금으로 쓰일 개연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빚에 빚을 더하는 셈인데 결국엔 가계부채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금융당국은 이런 점을 우려해 시중은행 여신 담당 임원들을 소집해 될 수 있으면 확대된 주택담보대출이 정책 취지에 들어맞는 부동산 구입 자금으로 쓰일 수 있도록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다.
“10건중 8건은 생활자금 문의”
정부는 이달 1일을 시작으로 부동산 규제 중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풀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기존엔 집값의 최대 50~60%(LTV)까지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지만 정부는 이 비율을 70%로 확대했다. DTI(서울 50%·수도권 60%) 한도는 60%로 단일화했다. 집을 사는 데 필요한 자금을 은행에서 쉽게 조달할 수 있게 대출한도를 늘려준 것이다. 여기엔 주택시장 활성화가 경기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계산이 깔려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출규제 완화 이후 주택담보대출 문의는 늘고 있지만 10건 중 8건은 생활자금을 빌리려는 수요자일 뿐 집을 사겠다는 수요는 극히 미미하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6억원이 넘는 고가아파트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지역에서 두드러진다. 서울 강남은 이번 조치의 최대 수혜지역으로 꼽힌다. 기존엔 6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LTV가 50%로 제한됐지만 이번에 70%로 풀리면서 대출한도가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인 개포동 개포주공 단지 주변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 개포점 관계자는 “규제 완화 이후 주담대 문의는 총 3건 있었는데 모두 기존 대출에서 추가로 돈을 빌려 생활자금으로 쓰겠다는 경우였다”고 전했다. 잠실5단지 우리은행 관계자는 “규제 완화 이후 주담대 문의는 늘었지만 10명 중 8명은 모두 생활자금 용도로 주담대를 받겠다는 고객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수요층 두터운 강북도 주담대 문의 ‘썰렁’
주택 실수요층이 두터운 서울 강북지역도 별다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래미안 단지를 끼고 있는 기업은행 공덕동 지점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주담대 문의는 늘었지만 대부분 2금융권에서 1금융권으로 갈아탈 수 있는지를 묻거나 LTV 한도가 늘었는데 추가로 얼마를 더 받을 수 있는지 등을 묻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 시중은행 여신정책팀 부장은 “매일 서울 지점 영업점을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생활자금으로 쓰기 위해 추가로 대출을 받거나 대환(고금리→저금리)하려는 문의가 대부분”이라며 “주택시장 비수기인 만큼 한달 정도 상황을 더 지켜봐야 효과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저축은행 신규 대출 문의 절반 감소
대출 규제 완화가 이뤄지면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을 찾는 수요자들의 발길은 뚝 끊겼다. 특히 일선 저축은행 창구에선 대출을 진행하던 고객이 중단하고 시중은행으로 갈아타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규제 완화 이후 신규 대출 문의가 지난해와 비교해 볼 때 절반 이상 줄었다”며 “다만 시중은행 대출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거나 생각만큼 대출한도가 나오지 않은 고객은 다시 저축은행으로 유입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