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금융 포퓰리즘도 우려한다

  • 등록 2012-09-26 오전 6:30:00

    수정 2012-09-26 오후 1:24:32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0∼2세 무상보육’ 정책이 시행된 지 7개월 만에 사실상 백지화됐다. 정부는 재정난을 이유로 들었다. 애초부터 제대로 된 수요 예측과 예산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권이 총선을 겨냥해 마구잡이로 내놓은 정책이란 점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다. ‘복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폐해다.

그러나 대선을 코앞에 둔 새누리당은 “0∼2세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모든 계층에 대해 지급하자는 게 당론”이라며 정부 개편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권 말 또다시 정부가 정치 논리에 끌려갈 수 있는 여지는 아직도 남아 있는 셈이다.

이런 폐해는 비단 복지정책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신용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금융정책에도 포퓰리즘 정책은 난무한다. 이른바 ‘하우스푸어’ 대책이 대표적이다. 하우스푸어란 통상 빚을 끼고 집을 샀는데 집값 하락 등의 이유로 원리금 상환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아직 정확한 정의가 내려진 적도, 집계가 이뤄진 적도 없다.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하우스푸어 대책의 하나로 ‘지분매각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내놨다.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공공기관이 하우스푸어가 소유한 주택의 일부 지분을 사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정부 보증과 공공기관의 자금 투입은 불가피하다. 정체도 불분명한 하우스푸어들에게 재정을 투입해 구제하자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당장 재정투입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고민의 정도는 날로 깊어지는 분위기다. 위기 때마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온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재정 투입을 고려한) 박 후보의 공약도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포함해 고려해볼 수 있다”며, 다소 애매한 답변을 내놓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하우스푸어는 문제는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여지는 있다. 그렇더라도 하우스푸어의 주택가격 대비 대출금액 비율(LTV·loan to value) 및 원리금 상환 동향 등을 점검해 구제 대상의 범위를 분명히 하는 게 먼저다. 은행들이 하는 대책도 더 지켜봐야 한다.

자칫 대선 이후 한 자리 차지하려는 정치인들의 입방아에 금융당국이 휘둘리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이유다. 정권 말 변심하는 금융관료가 아닌 영원한 대책반장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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