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가 사용 편의 면에서 굉장히 뛰어납니다. 반면에 삼성 휴대전화는 소프트웨어가 계속 같은 수준에서 반복되는군요. 노키아는 혁신적인데다가, 신제품마다 메뉴가 달라져도 새로 배우기 쉽습니다."(yahoo.com, ID: crysti_reyes)
"(LG가 앞으로 HD DVD 확산을 도울 것이란 뉴스에 대해) 나와 같이 HD DVD 타이틀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LG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LG 제품을 사용해야겠군요." (google.com, ID: jhhg0026)
인터넷 공간에 넘쳐나는 댓글. 이를 '버즈(buzz)'라고도 한다. 버즈는 '벌이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 혹은 '소문'이란 뜻을 가진 단어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의견이나 경험을 게시판, 블로그, 포럼 등에 게재한 글과 이에 대한 댓글 등을 통틀어 '버즈'라고 부른다.
기업은 버즈를 단순히 네티즌들의 수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업 경영에 매우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 댓글에 담긴 소비자들의 의견을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조사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온라인 구전(口傳·word of mouth) 조사 업체이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블로그·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떠있는 많은 댓글들이 이들의 조사 대상이다.
미국의 온라인 구전업체인 심포니(Cymfony)의 짐 네일(Nail) 애널리스트는 "마케팅 관계자들은 온라인에 올라온 소비자들의 의견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must-have)"라고 말했다. 온라인 구전은 기업 마케팅을 넘어 정치, 문화 등에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버즈 조사가 기업의 정책변화를 이끌어 낸다
온라인 구전 분석의 프로세스는 이렇다. 특정 기업의 의뢰를 받은 전문 분석 업체는 우선 자체적으로 개발한 인터넷 검색 엔진(search engines)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해당 기업과 관련된 방대한 글들을 수집한다. 검색 엔진 프로그램은 글의 성향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글을 올린 네티즌의 연령과 성별은 어떠한지 등을 가려내 의미 있는 '정보'를 만들어 낸다. 이어 전문 분석 업체의 연구원들은 분석한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해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소비자들의 온라인 구전 분석은 상품 발매를 위한 시장 조사, 경쟁사와의 차별화 전략, 기존 제품의 문제점 보완 과정 등에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어떤 이슈가 터졌을 때, 이에 관한 네티즌들의 반응 변화를 알아보는 데도 유용하다.
다급해진 크래프트 푸드사는 미국 최대 온라인 구전 조사업체 버즈 메트릭스(Buzz Metrics)에 온라인 구전 조사를 의뢰하기에 이른다. 버즈 메트릭스는 크래프트 푸드의 이름이 언급된 댓글들을 인터넷 포럼, 블로그, 게시판 등을 뒤져 몽땅 찾았는데 총 12만 명 이상에 260만여 건에 이르렀다.
이 댓글들을 분석한 결과 크래프트 푸드와 관련된 내용 중 30%가 트랜스 지방을 언급하고 있었다. 소송 전 트랜스 지방을 거론한 비중이 0%였던 것에 비한다면 큰 변화였다.
또 네티즌의 절반 이상이 트랜스 지방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래프트 푸드 브랜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네티즌 비율은 소송 전 20%에서 소송 후 12%로 급감했다. 분석 보고서를 받아 본 크래프트 푸드는 소송이 제기된 지 두 달 후 오레오 쿠키뿐 아니라 자사 스낵 제품 트랜스 지방을 모두 제거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 식품의약국(FDA,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은 모든 식품 업체들에 영양소 표시 항목에 트랜스 지방 함유량을 기재하라고 요구했다.
온라인 구전 조사업체 버즈 메트릭스가 위기에 처했던 크래프트 푸드로 하여금 적절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네티즌들이 올린 260만여 건의 온라인 글이 바로 크래프트 푸드를 위기에서 구해낸 셈이다.
■블로거의 힘
미국 소비자의 90%는 구전으로 전해진 상품 평을 신뢰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품 구매를 하고 있다. 하나의 댓글이 다른 소비자들의 구매 행동을 좌우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이다. 컴퓨터 업체 델(Dell)도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기 이전에 이미 제품에 관한 소문이 떠돌곤 하는데, 이 소문보다 더 빠르게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건 영향력 있는 한 명의 블로거(blogger)"라고 밝힌 바 있다.
블로거들의 평가는 시장의 상황을 예리하게 꿰뚫어 볼 때가 많다. 휴대용 게임기인 소니 PSP가 2005년 유럽에 출시되기 전에 영국의 온라인 구전 조사업체 웨이브 메트릭스에 조사를 의뢰했다. 웨이브 메트릭스는 소니의 PSP와 경쟁 제품인 닌텐도의 DS를 항목별로 비교 분석했다.
소니는 닌텐도보다 인기가 좋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웨이브 메트릭스가 온라인 구전 조사를 통해 소비자 만족도를 비교해보니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분석 결과 닌텐도 DS의 인기가 소니 PSP를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실제 판매 실적도 조사 결과 그대로였다.
국내에서도 버즈 분석 결과를 보고 기업들이 놀란 케이스가 적지 않다. 2006년 말 한국의 대형 가전업체 중 하나가 경쟁사보다 신제품을 빨리 출시하려는 욕심에 완성도가 조금 낮은 제품을 급하게 출시했다. 그러면서 개선할 점을 찾기 위해 온라인 구전 조사를 의뢰했다.
사용자들의 불만이 많이 제기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수확이 있었다면 제품의 오류 등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을 담은 글들이 일부 블로그를 통해 유포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회사는 이런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받아들여 완성도를 높인 업그레이드 버전을 출시했다. 이 회사는 이후 이런 전문가들의 글이 많이 실리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온라인 구전 조사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인구지리학적으로 네티즌 분류하기가 어렵다. 소비자가 인구·계층을 구분하여 글을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동영상 콘텐츠의 경우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까다롭다. 또 연구원이나 소비자의 주관적 판단으로 오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다른 조사보다 높은 편이다. 글을 올린 네티즌 역시 소문을 확인하지도 않고 성급히 글을 올리거나,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온라인 구전 조사 시장은 팽창 중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댓글은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참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무시할 수 없는 새로운 조사 영역임에 틀림 없다. 특히 상품 종류가 다양하고 글로벌 비중이 큰 기업일수록 온라인 구전 조사의 의미가 높다. 이를테면 한국의 삼성전자가 신제품에 대한 미국 소비자의 반응을 바로 알고 싶다면 한국에서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현지 소비자에 대한 온라인 구전 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온라인 구전업계에서 대대적으로 불었던 인수·합병(M&A) 열풍은 그만큼 이 업종의 성장성이 높다는 방증이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인 닐슨(Nielsen)은 인텔리시크(Intelliseek)와 버즈 메트릭스를 차례로 인수,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합병된 이들 두 회사는 닐슨의 자회사로 활동 중이다. TNS도 이에 질세라 온라인 구전 업체인 심포니를 인수했다. 기존 리서치 업계의 양대 라이벌이 온라인 구전 조사 시장에서도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미국의 버즈 메트릭스의 경우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피앤지(P&G), 노키아(Nokia), 소니(Sony) 등 약 100개 업체로부터 조사 의뢰를 받았다.
한국 대기업들도 외부에 공표를 하고 있진 않지만 온라인 구전 조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한국의 리서치회사인 메트릭스(Metrix)는 2005년부터 온라인 구전 조사를 전담하는 버즈 인덱스팀을 따로 꾸렸다.
조일상 메트릭스 대표는 "지금까지 산업별 1, 2위 업체를 중심으로 40여 개 브랜드에 대해 분석해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내 온라인 구전 조사업체인 다음소프트 손길영 이사는 "자동차·휴대전화 등 고가품을 파는 기업에서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며 "지난해 매출이 30억 원이었는데 올해는 60억 원 정도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온라인 구전 조사 시장은 인터넷 강국의 명성에 비한다면 초라한 편이다. "국내 댓글 문화가 워낙 '공격적'이어서 온라인 구전 조사 결과를 토대로 최고 경영자들을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업계의 설명이다. 원우현 KDI국제정책대학원(언론학) 교수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온라인 구전조사는 비용 대비 가장 효과적이고 신속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조만간 한국에서도 각광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