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로 출발해 이듬해 크리스마스까지. 미국 천재 작곡가로 통하는 조너선 라슨의 대표작 ‘렌트’는 이 1년 동안 싸우고 이별하고 죽고 절망하면서도 사랑하는 뉴욕 변두리 공장지대의 젊은 예술가들(대부분 에이즈 환자거나 동성애자)을 다룬다. 주인공은 작곡가 로저(조승우)와 클럽댄서 미미(고명석). 미미가 양초불을 빌리러 로저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둘의 시간이 뒤섞인다.
‘지킬 앤 하이드’와 ‘헤드윅’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렌트’의 조승우는 좀 심심한 감이 있다. 지킬·하이드의 강렬한 대비도 없고, 트랜스젠더 혼자 줄창 노래하는 콘서트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하고 고요한 배역에서도 조승우는 존재감이 컸다. 노래와 대사의 이음매가 부드러웠고 매듭을 묶어야 할 대목에선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다른 9명의 배우에 맞서 노래할 때도 파워가 달리지 않았다.
‘렌트’에서‘이 다음에(Another day)’를 부르는 조승우(로저)와 고명석(미미)
객석엔 오래지 않아 ‘조승우 바이러스’가 퍼졌다. 불완전한 개막 공연의 충격이 잊혀질 정도로 배우는 힘이 셌다. 1막에서 미미의 노래 ‘Out tonight’에 이어 부른 ‘Another day’에서 그는 “말을 할까, 말을 할까…”로 삼키다가도, “너조차 내 마음에 불을 붙일 수는 없다”며 미미를 마음 밖으로 밀쳐냈다. “다음 번에, 다른 날에―”로, 이 노래는 끝난다. 2막에서 마크(나성호)와의 이중창 ‘What you own’, 반쯤 죽은 미미 앞에서의 고백 ‘Your eyes’와 함께 이날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장면이다.
공연은 3월 4일까지 신시뮤지컬극장. 로저 역은 조승우와 신동엽이 나눠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