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영상 저편에서 한 남성이 등장해 비장한 표정으로 호흡을 가다듬는다. 한참을 심호흡하던 그는 트럼펫을 꺼내 들고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긴 호흡으로 불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 말이다. 40초가량 계속해서 이어지는 트럼펫 소리가 고요한 전시장 안에 울려 퍼졌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비드 징크 이(David Zink Yi·50)의 16mm 필름 작업 ‘뉴마(PNEUMA, 2010)’의 한 장면이다. 직접 촬영한 해당 영상에 등장하는 이는 오랜 협력자이자 음악가인 율리에스키 곤잘레스 구에라(Yuliesky Gonzalez Guerra)다. 퍼포먼스, 사운드, 그리고 징크 이 작업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가의 손길이 직접적으로 닿는 참여를 보여주기 위해 작품들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다비드 징크 이의 국내 첫 개인전 ‘플레잉 언틸 페일류어’(PLAYING UNTIL FAILURE)가 오는 6월 17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쾨닉 서울에서 열린다. 제14회 광주 비엔날레 출품작 ‘올 마이 컬러스(ALL MY COLOURS)’를 포함한 약 20점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최근 쾨닉 서울에서 만난 징크 이는 “중국 이민자의 후손이라 아시아의 전통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 무척 흥미롭다”며 “물질과 육체 사이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둘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한 작품들을 한국의 관람객들도 즐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 페루 출신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다비드 징크 이(사진=쾨닉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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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 이는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리버풀 비엔날레, 매니페스타, 런던 테이트 모던, 베를린 N.B.K, 비엔나 벨베데레 등에서 주요 전시를 했다. 그의 작업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룩셈부르크 MUDAM,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 등의 저명한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인 그는 사진에서 필름, 퍼포먼스, 재즈,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몸과 정체성에 관해 탐구해 왔다. 조국인 페루 원주민과 중국, 이탈리아, 독일 이민자의 후손인 작가는 자신의 복잡한 혈통을 받아들이고자 스스로를 민족지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작품 활동을 해왔다.
| 다비드 징크 이 ‘ALL MY COLOURS’(사진=쾨닉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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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 이의 작품들은 예술적 탐구 방식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재료, 형태, 색 등 각 요소에 대한 예술적 실험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작품의 창작 과정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도록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올 마이 컬러스’는 독특한 유약처리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여러 도자 형태를 통해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나선형 모양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스파이럴’(Spiral) 작품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의 질감과 형태 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대형 도자 조각과 서울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실크 작품도 선보인다.
작업은 한달 반이 걸리기도 하고, 최소 3주 이상의 시간을 거친다. 징크 이는 “작품에 건축적인 요소를 차용한 것도 있고, 자르는 행위와 드로잉 등 각각 다른 작업방식으로 작품을 만든다”며 “어떤 작업 과정을 거쳐 작품들이 탄생했는지 유추해 보면서 작품을 감상하면 좋을 것”이라고 관람팁을 전했다.
| 다비드 징크 이의 나선형 조형물 ‘무제(2022)’(사진=쾨닉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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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비드 징크 이의 세라믹 조각품 ‘무제(2019)’(사진=쾨닉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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