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불특정, 기간 맘대로 연장…불만 폭주하는 공정위 조사

[통제장치 없는 공정위 조사권]②
위반 법조항만 알려주는 공정위…피조사자 방어권 ‘깜깜’
조사기간 연장도 사실상 임의로…“형사처벌 가능” 압박도
20대 국회 법안 발의되기도…“혐의 구체적 고지 노력해야”
  • 등록 2022-06-14 오전 5:45:00

    수정 2022-06-15 오후 9:31:34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공정거래위원회는 행정조사와 강제조사의 편리한 부분만 따온 것 같다. 행정조사의 편의성을 그대로 갖췄으면서도 강제력도 상당하다. 협조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겁을 주는데 자료를 안 내주고 버틸 기업이 얼마나 있나. 어떤 조사를 한다고 공문을 들고 온 지도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공정위 조사에 대한 한 기업 사내변호사의 평가다. 다수의 조사방해 관련 형벌조항으로 인해 `영장 없는 강제조사`로 불리는 공정위 조사를 두고 재계의 불만은 여전하다. 조사 중 변호사 입회권 등을 명문화한 ‘사건처리 3.0’, 조사공문 교부를 의무화한 공정거래법 개정 후 약간의 변화가 있었으나 여전히 혐의를 불특정해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임의로 조사 기간을 연장하는 등 절차적 통제와 방어권 보장이 크게 미흡하다는 토로다.

위반 법조항만 알려주는 공정위…피조사자 방어권 ‘깜깜’

13일 이데일리 취재에 따르면 공정위 조사에서 재계의 불만이 가장 큰 부분은 혐의를 명료하게 특정하지 않고 자료를 수집하는 행위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때 법원을 설득하기 위해 최대한 자세히 사건 내용과 혐의를 적시한다. 대부분은 별지를 통해 자세히 기재한다. 이 때문에 압수수색 대상자는 자신들의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으로 조사를 받는지와 어떻게 방어를 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덧붙여 압수수색 과정에서 혐의와 관련 없는 자료를 수사기관이 확보하지 못하도록 항변하기도 용이하다.

공정거래위원회 전경(사진=이데일리DB)


반면 공정위 조사는 자세한 혐의를 기재하지 않고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 ‘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카르텔)’와 같이 위반 법 조항만 단순히 적은 조사공문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압수수색 영장과 달리 피조사자의 협조를 바탕으로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아도 되는 행정조사의 임의성을 차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사업 부문이 적은 소형회사라면 법 조항만 알아도 어떤 사건 때문인지 짐작할 수 있으나 대·중견기업의 경우는 어떤 위반인지 파악조차 쉽지 않다. 사건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니 조사 과정에서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공통된 토로다. 공정거래법 로펌 사이에서는 “공정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보고 있는지 빨리 알아내는 게 실력”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고 한다.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 A씨는 “특히 부당내부거래 사건의 경우 그룹 거래 관계 전체를 봐야 한다면서 사실상 모든 자료를 쓸어간다. 미흡한 자료를 직접 만들어서 제출하라는 요구도 많다”며 “공정위가 타깃을 한 사건이 분명히 있음에도 영장처럼 통제절차가 따로 없다 보니 사건 관계 없이 최대한 많은 자료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기간 연장도 사실상 임의로…“형사처벌 가능” 압박도

사실상 임의에 가까운 현장조사 기간연장 역시 공정위가 질타를 받는 부분이다. 압수수색 영장의 경우 자료를 강제로 확보할 수 있기에 여러 금융권의 협조가 필요해 장기간이 필요한 계좌 압수수색을 제외하고는 1~2일 정도를 명확히 특정한다. 만약 수사기관이 정해진 기간 내에 압수수색을 마치지 못한 경우 다시 법원에서 영장을 받는다.

하지만 공정위 현장조사 기간은 공정위가 내부적으로 결정해 사실상 제한이 없다. 최근 C사에 대해서 현장조사를 했던 공정위는 비협조한다는 이유를 들어 조사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통제 없는 조사기간 연장이 조사대상자의 압박수단으로 사용되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관이 사무실에서 상주하며 감시하는데 업무가 제대로 되겠나. 기간연장은 사실상 협조하라는 압박”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 B씨는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정규 근무시간 내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야간조사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야간조사를 진행할 것인지 혹은 기간을 연장해 진행할 것인지 회사에 물으면 공정위가 부담스러운 회사는 대부분 야간조사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재계에서는 공정위 요구 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 ‘조사방해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반복해 고지하는 것, 압수목록이 특정된 압수수색 영장과 달리 공정위 조사공문은 회사명(법인명)만 기재돼 부서 제한 없이 조사가 가능한 것도 공정위 조사권의 맹점으로 꼽았다.

20대 국회 법안 발의되기도…“혐의 내용 구체화 노력해야”

20대 국회에서는 이 같은 공정위 조사권한을 통제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김종석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전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행정조사기본법 일부 개정안’에는 공정위 조사를 행정조사기본법의 예외로 두지 않고 강제성을 없애는 내용을 담았다. 또 조사공무원의 조사권 남용 금지 의무 부여나 위법하게 취득한 자료를 행정조사에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다만 해당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 폐기됐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가 사건내용을 포함해 혐의를 구체적으로 기재한 조사공문을 제시하는 것 등은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며 “공정위 조사가 강제조사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스스로 절차적 노력을 더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①영장 없는 강제조사…제동 걸린 ‘경제검찰’ 공정위 조사권

③범칙조사제도 or 행정영장제도?…공정위 조사 통제장치 대안은

④‘방어권만 강화되는데 큰 사건 할 수 있나’…고심 깊어진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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