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R이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생긴 제도입니다. 총자산이 2500억달러 이상인 대형은행들은 총 자산 중 정해진 비율만큼은 꼭 자기자본으로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가진 돈에 비해 너무 많은 자산을 산 상태에서 경기둔화가 오면 또 다시 금융위기를 맞을 수 있으니까요. SLR은 총익스포저(위험노출액, 즉 매입한 국채·파생상품 등)를 분모로 하고 은행의 기본자본을 분자로 해 산출합니다. 연준은 대형은행이 이 SLR을 3% 이상(JP모건 등 ‘시스템으로 중요한 금융기관’은 5% 이상)으로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죠.
그런데 지난해 코로나19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자 연준은 SLR 규제를 완화시켜줍니다. 어떻게 완화했냐면, SLR을 계산할 때 미국 국채 등은 빼주겠다고 한 겁니다. 즉 SLR의 분모가 되는 총익스포저 금액 중에서 국채가 빠지니까 은행들은 똑같은 자본을 들고 있어도 SLR을 높일 수 있었고, 높아진 만큼 추가로 국채를 살 수 있게 된거죠. 대형 은행들이 국채를 추가로 사들일 수 있게 되자 국채 수요가 증가했습니다. 이로 인해 국채 가격은 뛰었고 금리는 내렸죠(채권은 최종 만기 수익률이 정해져 있는 상품, 즉 ‘Fixed Income’이니까요. 채권의 만기 수익률이 1만원으로 고정된 상태라고 가정하고, 매매 가능한 채권 가격이 9524원에서 9709원으로 오르면 반대로 만기까지의 금리가 5%에서 3%로 내리는 원리입니다). 연준의 이러한 조치로 코로나19 이후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게됐습니다.
일각에선 지난달 말 7년물 국채 입찰이 부진했던 것도 SLR 규제 완화 종료를 두려워 한 은행들 때문이라는 시각도 제기됩니다. 지난달 25일 미국 재무부는 620억달러 규모의 7년물 국채 입찰을 진행했는데요, 매우 수요가 부진했던 탓에 10년물 국채 금리까지 상승한 바 있죠.
앞으로 국채 매도가 늘어나면 국채 금리는 더 뛸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국채의 값이 싸지니까 반대로 금리가 상승하는 거죠. 안그래도 지금 경기 반등을 반영해 국채 금리부터 뛰어서 주식시장이 시름하고 있는데, SLR 종료까지 겹친다면 국채 금리가 추가로 더 뛸 수 있겠죠. 금리가 오르면 무위험 국채를 사도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증가하기 때문에 주식시장엔 악재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풀린 ‘돈’의 힘으로 가파르게 오른 성장주에겐 더 골칫거리죠.
한편 이번주에는 미국 국채 입찰까지 예정돼 있습니다. 오는 10일 미국 재무부가 10년물 국채 380억달러 분에 대한 입찰을 진행합니다. 국채 입찰에 응하는 참가자들은 산 국채를 다시 헤지펀드나 연금에 팔아야 하기 때문에, 시장에 국채의 수요가 어느정도인지를 면밀히 판단하고 입찰에 나섭니다. 이때 국채 입찰이 또 부진하면 2월 말과 같이 채권 금리가 상승해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주식에 투자하는데 채권을 알아야만 하는 어려운 시기입니다. 투자자들은 여러 신호를 제대로 파악하고 신중히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