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투자자 김모씨는 3일 자신의 PB에게 삼성전자(005930) 주식을 1억원어치(2000주) 사달라는 주문을 넣었다. 지난 1월 상승장을 타지 못한 아쉬움에 이번이라도 저점 매수에 나서야겠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김씨의 주변엔 지난해 부동산 규제 이후 삼성전자 주가가 6만원 아래를 밑돌면 사려는 수요가 부쩍 늘었다.
슈퍼 개미가 들썩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장이 불확실성에 휩싸인 가운데 위기를 기회로 보고 저가매수에 나서는 개인의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개인들은 금이나 달러 등 안전자산을 정리하고 주식을 매수하는 한편, 일부는 부동산에 투자할 돈까지 주식으로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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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증권사 각 지점의 프라이빗뱅커(PB)들은 쏟아지는 고객 전화에 갸우뚱하는 일이 많다. 코로나19로 짙어진 불확실성에 외국인과 기관은 연일 매도하는데 ‘큰 손’의 개인투자자들 만큼은 주식을 사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잠실 영업점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지난해 말에 대주주 양도세 요건을 피하겠다고 주식을 다 팔았던 고객도 지난달 28일과 지난 2일엔 주식 매수를 시작하는 한편 향후 지수가 더 빠지면 추가로 매수하겠다는 의사도 전달해 왔다”며 “돈 있는 개인 투자자들은 계좌에 돈을 더 입금해 가면서 지수가 더 빠지기만을 기다리는 분위기이고 이들은 신용을 써도 현금이 넉넉해서 반대매매 당할 계좌도 많지 않다”고 귀띔했다.
갖고 있던 금과 달러 등 안전자산을 팔아 주식 매수에 동참하는 개인도 있다. 한 70대 개인투자자는 “주거래 은행 직원이 코로나19는 단기적 충격에 불과하다며 금이랑 달러를 정리하고 주식을 매수하는 게 낫다고 권유했다”며 “직원의 말이 납득이 돼서 갖고 있던 금을 모두 정리하고 주식을 매수했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국인과 기관은 파는 가운데 개인만 매수에 나서는 장세가 줄곧 이어지고 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달 17일부터 3일까지 외국인은 5억 3004억원, 기관은 1조 3364억원을 순매도 중인 와중에 개인은 12거래일 연속 순매수하며 총 6조 627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직전에 개인 매수세가 가장 오래 이어졌던 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위기 당시 2012년 5월 2일부터 24일까지 17영업일 연속 순매수했을 때로, 당시 개인은 2조 6769억원 가량의 주식을 순매수 했다. 다만 당시엔 기관도 1조 1434억원 가량 순매수하며 매수행렬에 동참했다는 점이 지금과 다르다.
이렇게 개인의 나홀로 매수세가 고강도로 이어지는 장세는 극히 이례적이란 게 증권업계의 반응이다. 지난 2일에는 외국인이 8000억원 가까이 매도했는데도 불구하고 개인 매수세 덕분에 1% 가까운 상승세를 보였을 정도로 ‘개미 주도장’이 이어지고 있다. 증시예탁금도 코스피 지수가 장중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2018년 1월 29일 이후 최대치(지난달 말 기준 31조 2100억원)를 기록 중이다.
개미는 ‘성투’할까…증권업계 반응은 엇갈려
다만 개인 매수세에 대한 증권업계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개인 매수세는 언제라도 방향성을 바꾸는 경향이 있는 데다 여전히 거센 외국인의 매도세도 개인투자자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부동자금이 유입되는 추세가 시작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긴 한데 지금으로선 애매하다”며 “개인들만 매수하는 장에서 상승세가 오래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회의감을 드러냈다.
한켠에선 개미 주도장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곽상준 신한금융투자 본사 영업부 부지점장은 “주식을 안하던 고객들이 하나 둘씩 찾아오고 있고 있다“며 “여기에 정부에서 펀드 소득공제 등 증시 부양책까지 내놓는다면 증시가 의외의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