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 이런 현수막을 내건 옷가게를 보게 됩니다. 의류 원가가 30%라고 가정하면 수익을 포기한 채 사실상 손실을 보면서 물건을 파는 겁니다. 적자장사를 하는 이유는 ‘재고’의 무서움 때문입니다.
옷가게 주인 뿐 아니라 기업들에게도 재고는 부담입니다. 재고를 적재하는 창고 임대료나 관리인력 등 재고가 쌓이면 비용이 들어갑니다. 눈물의 바겐세일을 통해서라도 재고 정리에 나서는 이유입니다.
금융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금융기관의 재고는 상품이 아닌 ‘돈’ 이라는 겁니다. 금융기관도 돈을 쌓아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돈을 쌓아두는 대신 기업이나 가계에 빌려주면 이자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금융기관도 ‘급전’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점입니다. 세금도 내야 하고요, 금융시장에서 채권 등 금융상품을 사들이기 위해 큰 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돈을 맡긴 고객들이 돈을 찾겠다고 하면 내어줄 자금도 있어야 합니다.
다만 언제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할지 정확히 알기 힘든 상황에서 무작정 돈을 쌓아두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그 때 그 때 돈을 빌리고, 며칠 안에 바로 갚아버리는 것이 이득이죠.
그래서 금융기관들은 자기들끼리 서로서로 급한 돈을 빌려주고 갚는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신용이 양호한 금융기관들끼리 거래하니까 이자도 얼마 안 됩니다.
오늘 알아볼 것은 그중 REPO 시장인데요, 이들 사이에 오고 가는 이자가 REPO 금리입니다. RP금리라고도 부릅니다.
최근 이 RP 금리가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1일물(하루 동안 빌린다는 뜻입니다) RP금리가 8.75%까지 급등한(전일 대비 6.25%) 겁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2% 선에서 움직이던 RP금리가 16일 장중 4.75%까지 오르더니 17일엔 8%도 상회한 겁니다.
이렇게 금리가 오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금융기관들이 서로 ‘급전’을 융통하는 것 다른 데서 빌리는 것보다 금리가 낮기 때문입니다. 고리(高利)로 돈을 빌려야 한다면 단기금융시장을 이용할 이유가 없겠죠.
금리가 오른 것은 돈 빌려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장 세금을 내야하든 채권을 샀던 돈을 급히 빌려야 하는데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다면 이자를 높게 쳐줄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공교롭게도 REPO 시장에 참여하는 금융기관들의 단기 자금이 동시에 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전날 대규모 법인세 납부가 있었고요, 국채 발행 결제자금 수요도 쏠렸다고 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추후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금융기관이 빌려주거나 융통할 수 없는, 쌓아만 두도록 한 자금이 많았던데다(바젤Ⅲ 같은 규제를 통해서입니다) 연준도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시중 자금을 빨아들인 만큼 시중에 자금이 기조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문제는 REPO시장이 요동치는 경우 연준의 금리정책이 먹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연준은 기준금리격인 연방기금금리(FFR)를 조정하고, 이 금리가 REPO금리 등 단기금리로 확산되고, 나아가 장기금리까지 확산되는 경로를 통해 경기상황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목에 있는 REPO시장이 망가지는 경우 연준의 통화정책도 영향력이 약화할 수 있죠.
REPO금리가 또 급등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된다면,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너도나도 자금을 쌓아두려고 하고, 그만큼 투자나 소비에 소홀해지는 악영향이 생기기도 쉽습니다. 결국 경기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미국 REPO금리 변동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연준은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적어도 단기자금시장에서 쉽게 말라버리는 듯한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양적 완화(QE) 같은 어떤 조치를 단행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아직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