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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회장이 이번에 크루셜텍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 것은 동료 벤처기업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황 회장은 과거 2010년부터 2년간 벤처기업협회장으로 벤처업계를 이끌었다. 이후 남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2012년부터 3년 간 벤처기업협회장직을 수행했다. 크루셜텍을 창업한 안건준 대표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벤처기업협회장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황 회장을 비롯해 남 회장 등 벤처기업협회장을 지낸 이들이 모여 벤처업계 동료인 안건준 대표의 크루셜텍 살리기에 나선 것. 황 회장과 남 회장 외에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김철영 미래나노텍 대표 등 벤처기업가들도 CB 인수에 일부 참여하며 힘을 보탰다. 한 때 모바일 지문인식모듈 등에 주력, 시가총액이 1조원에 육박했던 크루셜텍은 지난해 매출액 796억원에 적자는 428억원에 달하는 등 최근 실적 악화를 경험한다.
하지만 황 회장을 비롯한 벤처기업가들이 지원군으로 나서면서 과거 발행한 CB에 대한 상환 등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다. 황 회장은 앞서 2006년 경영난을 겪던 벤처기업 파이온텍에 25억원을 ‘엔젤투자’한 경험도 있다. 황 회장으로부터 자금을 수혈한 파이온텍은 이후 기사회생, 나노바이오화장품 ‘볼륨톡스’ 브랜드 판매 호조에 힘입어 현재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이렇듯 벤처업계에 대한 ‘의리’를 보여준 황 회장은 우리나라 반도체장비분야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1986년 외국계 반도체장비회사에 입사, 당시 한국이 반도체 생산국임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장비는 수입에 의존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접했다. 엔지니어로 10년 가까이 반도체장비 연구와 함께 노하우를 쌓은 그는 ‘세계 1등 반도체 장비회사를 만든다’는 일념으로 1995년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했다. 이 회사는 이후 반도체 원자층증착장비(ALD)를 독자기술로 개발, 국내외 유수 업체들에 활발히 납품했다.
황 회장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이어 2007년 태양광장비에도 뛰어들었다. 이후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태양광 등 다양한 장비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2010년에는 매출액이 4234억원에 달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주성엔지니어링의 최대 실적으로 남아 있다.
그에게 또 한 번 시련이 찾아왔다. 2011년 이후 태양광시장이 침체를 보이면서 태양광장비 수주량이 크게 줄어든 것. 여기에 LCD시장도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투자가 감소했다. 주성엔지니어링 매출액은 2012년 800억원에 머물렀고 영업적자는 그보다 많은 838억원이었다. 당시 인력도 40% 정도 줄이는 등 아픔을 겪어야했다.
주성엔지니어링 매출액은 2015년 1756억원에서 이듬해 2682억원, 2017년엔 2727억원으로 매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 경기가 주춤했던 지난해에도 2640억원을 올리며 선방했다.
황 회장은 굴지 반도체장비기업을 키워낸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 기업가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이와 관련, 황 회장은 2010년 청년기업가정신재단을 만들었다. 청년창업을 독려하고 기업가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다. 재단 초대이사장을 지낸 그는 남 회장(2대 이사장)에 이어 지난해 말 또 다시 재단 수장 자리에 올랐다. 재단은 현재 △스타트업 멘토링 △창업실무교육 △아이디어 사업화 △창업경진대회 △국제교류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 중이다. 지난 2월에는 재단 산하에 기업가정신연구소도 설립했다.
황 회장은 “우리나라는 그동안 미국과 일본 기술을 모방하는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구사하며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했다. 이 과정은 ‘지식’이 아닌 ‘노동’에 의한 압축 성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빵(의식주)을 위해 노동을 하는 이들이 없다. 패스트팔로어 전략도 중국 등이 더 잘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국민소득 4만, 5만달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시 건국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며 “그리고 그 시작에는 반드시 기업가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