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전경련 간판을 떼어내야 할까

  • 등록 2016-10-21 오전 6:00:00

    수정 2016-10-21 오전 7:47:09

전경련이 자칫 해체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정체가 불분명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모금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이 치명적이다.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손목을 비틀어가며 강제로 돈을 거뒀다는 의혹이 점차 베일을 벗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단체들 중에서도 맏형을 자처해 왔던 입장에서 최대의 굴욕이다.

지금껏 밝혀진 바로는 권력 막후세력의 창구 역할을 했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모금 규모나 신속하게 처리된 재단설립 과정이 전경련의 역량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그 막후 고리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라는 최순실씨에 닿아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이 틈을 노려 전경련을 폐쇄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드세다. 국회에는 야권 주도의 ‘해체 결의안’까지 제출돼 있다. 전경련이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에 자금을 편법 지원했다는 눈총도 곁들여진 움직임이다. 권력의 심부름꾼을 자처한 업보다. 한편으로, 전경련이 경제개발 시대에는 존립 가치를 인정 받았을지라도 이제는 개발시대의 유물로서 효용가치가 다했다는 인식도 작용하고 있을 법하다.

하지만 감정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전경련 만한 조직이라면 일단 해산시킨 다음에는 다시 결성하기 어렵다는 절차상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권력의 청부를 받아 야기된 문제이므로 그 폐단을 끊는 근본 노력이 먼저 따라야 한다.

무턱대고 ‘퀵 서비스’를 받아들인 전경련에 책임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늘 속 권력자들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다른 창구를 택해서라도 언제라도 일어날 문제라는 뜻이다. 최순실씨의 딸이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을 초래함으로써 최경희 총장이 불명예 퇴진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조차 여지없이 권력에 농락당한 지경이다.

전경련이 지금처럼 성장하기까지 기업인들의 심혈이 깃들여졌다는 사실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을 맡았었고, 현대그룹을 일으킨 정주영 회장도 1977년 제6대 회장에 올라 무려 10년간이나 전경련을 이끌었다. 우리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 시기와 일치하는 기간이다. 그동안 축적된 발전 경험을 살려 나가려면 오히려 전경련을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상황에서 그냥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 문제의 재발 소지를 막아야 한다는 다짐이 요구된다. 전경련이 단순히 재벌 그룹사들의 의견을 결집하는 수준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인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지난날 그룹사 회장들이 보여 주었던 관심과 열정을 되살리는 노력이 요구된다. 국가 경제가 요청하는 경우 전경련을 중심으로 단결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모습은 상당히 바뀌었다. 서로 회장을 맡지 않으려고 기피하는 상황에서는 전경련 운영에 관심을 모으기 어렵고 결국 권력에 줄 서려는 모사꾼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으로 인해 세상이 온통 떠들썩한데도 정작 전경련 회장단이 벙어리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는 현실도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분위기다. 아니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는 뻔한 변명을 믿으라는 것인가. 전경련 이름으로 문제가 시작된 만큼 이에 대한 회장단의 해명이 따르는 것이 온당하다.

전경련은 1961년 재계의 대(對)정부 창구로 출범한 이래 숱한 시련을 헤쳐 왔다. 지금 사태는 권력에 너무 유착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다. 이번 쓰라린 경험을 교훈 삼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기를 기대한다. 그럴 의지가 없다면 당장이라도 간판을 떼는 게 서로에게 속 편한 결정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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