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계 화두로 등장한 전기자동차 부문에서 세계 1위 업체는 어디일까. 자동차산업의 본산인 미국의 GM 혹은 독일의 벤츠? 아니면 일본의 자존심 도요타?
정답은 중국 토종업체 비야디(比亞迪·BYD)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비야디는 지난해 전세계에 6만1722대의 전기차를 팔아 전기차 맹주였던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정상에 우뚝섰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미국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투자할 정도면 비야디의 성장성이 인정받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중국의 ‘첨단산업 굴기(堀起·우뚝 일어남)’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는 드론(drone:무인항공기) 산업에서도 중국이 세계 1위를 꿰찼다. 세계 1위 드론 제조업체 DJI를 비롯해 시마(SYMA), MJX 등 3개 중국기업이 전 세계 상업용 드론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했으니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다. 제조업의 세계적 강국인 한국이 세계시장 규모가 7조원대인 드론의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겼으니 땅을 치며 억울해할 만하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랴. 대다수 국가들이 전기자동차와 드론의 유망성과 상품화에 회의적 시각을 거두지 못할 때 중국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도전에 나섰다. 첨단기술에 머뭇거리는 국가들의 ‘엄숙주의’는 중국의 압승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사회주의 간판을 내건 중국의 ‘야심찬 자본주의 실험’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가운데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며 경제 우등생 반열에 오른 우리는 어느 순간 무기력과 무사안일에 빠진 초라한 자화상을 마주하고 있다. 역경에 굴하지 않은 우리 기업 특유의 기업가정신은 실종된 지 오래다.
또한 기업이 마음껏 경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 데 반(反)기업 정서에 깊이 함몰된 일부 사회단체와 정당이 기업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번 솔직해 보자. 국내 기업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높은 환율 덕분에 수출기반이 탄탄했으며 중국의 값싼 노동력 덕분에 원가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본이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달러 환율이 반토막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첨단기술 개발과 기업체질 강화로 엔고(高)의 파고를 넘겼지만 우리 기업은 아직도 고환율 정책이라는 모르핀 주사에 의존해 환율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는가.
우리기업의 미래에 대한 투자도 신통치 않다. 국내 30대 그룹의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액은 31조7000억원으로 2014년보다 오히려 5000억원 줄어들었다. 전기차, 드론,로봇 등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의 거센 파고가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데 우리는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는 고사하고 지금껏 진행해온 R&D마저 줄이고 있다는 얘기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삶에 성큼 다가선 4차 산업혁명은 기존 경제·정치·사회 지형을 송두리째 바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다. 멈칫하면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추락할수밖에 없다.
일본의 세계적 경영 사상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총장이 침체국면에 빠진 한국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40대 시절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같은 혁신적 기업가 50명은 있어야 한다고 설파한 것은 무기력증에 빠지고 현실에 안주하는 기업인에게 주는 따끔한 충고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업가정신과 기술혁신을 무기로 바람을 타고 험난한 파도를 헤쳐나가는 승풍파랑(乘風破浪)의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격변의 물결을 무시한 채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에 휩싸여 표류하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