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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집을 판 주부 김모(서울 노원구 월계동)씨도 요즘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달 말까지 잔금을 치르기로 한 매수자가 갑자기 날짜를 조정해 달라고 연락해 왔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집이 팔리지 않고 있다는 게 이유다. 김씨는 “잔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도 이사갈 집에 잔금을 치를 수 없게 된다”며 “집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으려해도 당장 다음달부터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진다고 하니 어떻게 자금을 마련할 지 큰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수도권 주택 매매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갈아타기’ 수요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내달부터 주택담보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지고 조만간 기준금리도 오를 것이란 소식에 매수세가 위축되면서 집이 팔리지 않고 있어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계절적 비수기인데다 금리 인상 가능성과 대출 여건 악화 등에 따른 ‘거래 절벽’이 예상보다 일찍 시작된 것 같다”며 “매매 거래 위축은 전셋값 상승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입주 앞둔 아파트 계약자…“살던 집이 안팔려요”
실제로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이달 들어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평균 1만 건 이상이던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 건수는 11월 9916건, 12월 8226건으로 준 데 이어 이달 들어선 현재까지 4492건에 불과하다.
거래 절벽의 최대 피해자는 전씨나 김씨처럼 새 집으로 옮겨갈 계획이었던 실수요자다. 살고 있는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갈 집에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입주 예정인 아파트 계약자들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오는 3월부터 위례신도시에 들어선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인 정모(여·53)씨는 “지금 살고 있는 분당신도시 전용 134㎡짜리 아파트를 한달 전에 매물로 내놨는데도 아직까지 ‘입질’이 전혀 없다”며 “만약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면 울며겨자 먹기로 전세를 놓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매수자들이 마냥 느긋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당장 오른 전셋값을 마련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거나 월세로 전환하는 데 따른 주거비 부담 증가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특히 자금 여유가 있는 수요층이 집 사기를 꺼리면서 전셋집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 팀장은 “주택 수요자들이 새 집을 사야 기존 주택의 임대 수요가 생겨난다”며 “하지만 매매 대신 전세로 눌러 앉으면 임대 물량이 줄어 결국 전월세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당장 다음달 시행하는 주택담보대출 심사 강화가 매매시장 위축을 불러와 전셋값을 더 끌어올릴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심사 때 이자만 상환하던 기존 방식에서 원금도 함께 상환하고, 소득을 따져 향후 상환 능력도 점검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출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봄 이사철을 맞아 매매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대출 규제가 시행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시장에서 내성이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통상 설 이후부터 매매 거래가 늘기 때문에 내달 중순이 향후 시장 분위기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