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대한민국 국보 1호는? 답은 숭례문이다.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쉬운 문제다. 국보는 317호 ‘조선태조어진’까지 지정됐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숭례문 정도다. ‘국보 1호’라는 상징성 탓이다. 하지만 국보에 붙은 번호는 문화재의 우열이 아니라 단순한 관리번호다. 다시 말해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국사 다보탑(국보 20호)보다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숭례문만큼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문화재도 드물다. 과거 숭례문 화재현장이 TV로 생중계될 당시 지켜보던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무너지는 숭례문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국보 1호를 ‘훈민정음’(국보 70호)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온다. 과거에도 교체론이 없지 않았지만 ‘혼란 방지’를 이유로 무산됐다.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스님)는 내년 광복 70주년 사업으로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바꾸자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벌써 5만여명이 이름을 올렸다.
숭례문의 위상을 흔드는 대목은 적지 않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에 숭례문을 ‘보물 1호’로 지정한 것을 해방 이후 ‘국보 1호’로 이어받았다는 것. 또 일제강점기 때 철거대상이던 숭례문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숭례문을 통해 한양에 입성했다는 점 때문에 승전 기념물로 보존됐다는 설도 있다. 불편한 진실이다. 또 복원과정에서 부실 논란 탓에 ‘짝퉁 숭례문’이 된 만큼 국보 1호의 자격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 과연 국보 1호를 교체해야 할까. 소탐대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교체했다고 치자. 나중에 더 뛰어난 가치를 지닌 문화재가 나타나면 그때는 어쩔 텐가. 또 바꿀 것인가. 비슷한 논리라면 동대문(보물 1호), 포석정(사적 1호), 대구 도동 측백나무숲(천연기념물 1호)도 논쟁의 대상이긴 마찬가지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차라리 국보 지정번호를 아예 삭제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