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나무속 붉은 빛이 눈에 시리다

화가 김병종의 라틴 화첩기행
  • 등록 2007-01-08 오후 12:21:00

    수정 2007-01-08 오후 12:21:00

[조선일보 제공] 1 높고 쓸쓸한, 외롭고 적막한

올드 아바나를 벗어난 차는 한적한 시골길로 들어선다. 나무그늘 아래서 놀던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먼지 자욱한 길을 따라온다. 휘발유 냄새가 좋아 차가 지나가면 무작정 따라 달리곤 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문명은 늘 자연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 유혹 속에는 언제나 얼마쯤의 치명적인 독의 기운이 들어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의 폭 좁은 길을 한동안 달리자 곰삭은 것처럼 오래된 마을이 나타난다. 산 프란시스코 데 파울로 마을. 마을 끝자락 오르막에 성채 같은 숲속의 집이 올려다 보인다. 원탁의 기사 속의 기네비어 공주라도 살 것 같은 그 집은 그러나 다가가서 보니 해수를 앓고 있는 짐승처럼 누워있다. 낡고 늙은 집은 성한 데가 없는데, 망루(La Vigia)라는 이름답게 저 멀리 아바나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만은 일품이다. 아바나 시내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 등을 옮겨 다니며 글을 쓰던 헤밍웨이는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여 정착한다.


▲푸른 숲, 붉은 꽃 속의 헤밍웨이 별장, 〈전망 좋은 집〉

그러나 노벨상을 받고 세속적인 명성과 돈을 거머쥔 헤밍웨이가 살았던 곳이라기엔 이 집은 이제 너무 초라하다. 파삭 주저앉을 듯 노후 된 집은 창문이 깨지고 회벽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갔다. 비가 오면 지붕과 벽엔 물이 샌다니 주인 떠난 집의 쓸쓸함은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그가 읽던 책과 전장을 누비던 종군 기자복, 놓친 고기에 대한 허풍과 호탕한 웃음소리를 기억하고 있을 낚시도구며 사진자료 등은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다 한다. 남아있는 흔적이라곤 그가 사랑했던 고양이들의 무덤(개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몇 개뿐. 헤밍웨이가 떠난 후 방치되다시피 한 이 집은 허리케인에 시달려 붕괴 위험에까지 처한 상태란다.

쇠락한 집의 뜰에 서서 오래 전, 불빛이 은성하고 음악소리와 웃음소리가 왁자했을 이 곳을 상상해본다. 에바 가드너, 게리 쿠퍼 같은 스타들과 세계적인 명사들을 초청해서 파티를 벌이고, 문맹인 어부 친구들을 불러 앉혀놓고 그들을 모델로 쓴 소설을 낭독하곤 했다던 그 밤의 풍경들. 풍성한 음식과 불빛이 어룽거리는 풀 사이드에 앉은 그는 핑카 비히아의 황제였을 것이다.

헤밍웨이가 아바나 시내를 내려다보며 글을 썼다는 별채 3층의 작은 방에 올라가본다. 달랑 원목 책상과, 바닥의 호랑이 가죽, 그리고 안락의자 하나가 전부다. 내가 보았던 세상의 서재 중 가장 소박한 서재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그의 하드보일드 문장처럼.

1939년부터 20여 년 동안 이 집에서 살면서 문학사에 남을 작품들을 생산했고, 또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 생애의 가장 화려하고 빛나는 나날들을 여기서 보낸 셈이다. 그 날의 불빛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나.

2 〈필라르〉는 기억하고 있을까

후원의 수영장 곁에는 그가 사랑했던 목선 〈필라르〉가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이 배를 타고 청새치 낚시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중에는 쿠바 근처에 접근한 독일 잠수함을 추적하기 위해 1인 군대가 되어 기관포에 바주카포까지 싣고 출정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까지 남아 있다.
 


▲춤과 노래가 있는 아바나성당 부근 거리.

그는 네 번의 결혼을 했다. 열정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내들은 그의 음주벽과 거친 매너와 무질서한 일상에 진저리를 치며 떠나갔다. 이런 그의 곁을 변함없이 지킨 존재가 저 보트 필라르였고 그 배에 동승했던 쿠바인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였다. 그러나 마음으로 후원했던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자 아이러니하게도 헤밍웨이는 소개령에 따라 이곳을 떠나게 된다. 이미 정신적 쿠바인이 되어있었던 그에게 이 디아스포라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때 아바나를 떠나며 그는 이 정든 집 핑카 비히아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감이나 했을까.

3 패배를 향해 쏘다

미국으로 돌아와 아이다호 근처에 자리를 잡은 헤밍웨이는 일생 동안 무수히 자신을 스쳐 지나갔던 검은 그림자의 사내와 다시 조우한다. 쾌활하고 호탕하고 지독히 쾌락지향적인 그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우울한 모습의 또 다른 헤밍웨이였다. 사냥과 투우, 이탈리아 북부전선에 스페인내전까지, 무모할 정도로 자신을 내몰아 육체의 극단을 실험하던 그였다. 그뿐인가, 자동차사고에다 아프리카에서의 비행기 추락사고까지 그는 자신의 육체를 놓고 무수하게 생사의 거래를 벌이곤 했다. 그리고 그런 모험 뒤엔 곧 “죽은 것처럼 공허하고 무가치한 느낌”에 빠져들곤 했다. 종종 수줍음을 타기도 했던 그에게는 다중인격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가 남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강인한 남근주의자의 모습 뒤로 감추고 싶었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가 어쩌면 아주 연약한 내면을 가졌던, 소년 같은 남자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작품 속에서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군상을 끊임없이 창조해냈던 헤밍웨이. 그가 정녕 두려워했던 건 기실 패배와 죽음의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육체적으로도 이미 쇠잔해있었지만, 더 이상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슬픈 깨달음에 도달한 그는, 패배를 인정하기 전에 스스로를 파괴해버리겠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다호로 돌아온 다음해, 1961년 7월 2일 아침. 고요한 숲을 뒤흔드는 총성에 그의 네 번째 아내 메리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 두 발의 엽총 소리를 마지막으로 그는 생을 마감한다. 정박한 배의 밧줄을 끊듯 그렇게 육체의 줄을 끊어버린다. 육체의 줄을 풀어 그는 다시 카리브의 푸른 물을 건너 이 핑카 비히아로 돌아왔을까.

그의 혼령인 듯, 초록나무 속에 점점이 박힌 프람보얌의 붉은 빛이 눈에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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