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싱글 맘’이 아닌, ‘싱글 대디’가 등장하는 한국 영화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 혹시나 드물게 등장했더라도, 원인은 원하지 않는 이별 혹은 사별이었다. 객석을 눈물 콧물 범벅으로 만들었던 ‘고스트 맘마’(1996)에서 김승우는 아내(최진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은 아들을 키워야 했고, “나를 아버지 말고 삼촌으로 불러라”라고 여덟 살 아들에게 기염을 토하던 ‘닥터 봉’(1995)의 바람둥이 치과의사 한석규도 ‘싱글 대디’가 된 이유는 사별이었다.
▲ 영화 속에서 싱글 대디가 등장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왼쪽부터‘파송송 계란탁’‘맹부삼천지교’‘이대로, 죽을 순 없다’‘돈텔파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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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싱글 대디’들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다. ‘싱글 대디 25만’의 현실을 반영하듯, 액션 멜로 호러 등 장르와 상관없이 비일비재하게 등장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강적’은 형사와 범인의 쫓고 쫓기는 상황을 긴박하게 그린 액션영화지만, 형사 박중훈의 설정은 ‘싱글 대디’. 또 오는 29일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SF 장르지만, 주인공인 한강변 매점 주인 송강호는 여중생 딸을 혼자 키우는 아버지로 묘사된다.
상황도 이제는 ‘사별’이 주(主)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가 남자 앞에 등장하는 게 요즘 트렌드. 아직 고교생에 불과한 정웅인이 수업 중에 바구니에 담긴 아기를 받는 섹스코미디 ‘돈텔파파’(2004)는 극단적 사례라고 하더라도, ‘파송송 계란탁’(2005)의 대책 없는 백수 임창정에게 “당신이 내 아버지”라며 찾아온 아홉 살 소년도 사전 예고는 한 적이 없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인 ‘로맨스 파파’에서는 30대 성형외과 의사에게 여고생이 불현듯 찾아온다. 두 사람의 얼굴은 판박이. 젊은 시절 혈기로 정자은행에 팔아 넘겼던 자신의 정자(精子)가 의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소녀는 “부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말한다. 이제 30대 아버지와 여고생 딸의 동거가 시작된다.
이들 영화에서 의미 있는 지점은 ‘싱글 대디’가 된 자극적 원인이 아니라, 철없는 아버지가 아이와 보육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대목이다. ‘맹부삼천지교’(2004)에서 자식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생선 장수 조재현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도 고교생 아들을 통해서고, ‘돈텔파파’의 철부지 고교생 정웅인도, ‘파송송 계란탁’의 백수 임창정도 자식이라는 거울을 통해 한 뼘 더 성장한다.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는 “최근 영화 속 ‘싱글 대디’들은 아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