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국민 전체 위해 즉시 수입했어야…정부 결단 늦었다"

[물가대응 옳았나]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인터뷰
"공급 부족 시 수입해 가격 안정시켜야 글로벌 경제"
"국내 피해 농가에는 기금 등 통해 별도 적정 지원"
"선거 앞두고 물가 보이지만…'성장' 놓치지 말아야"
  • 등록 2024-04-10 오전 5:03:00

    수정 2024-04-10 오전 5:03:00

[세종=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정부가 물가안정을 우선으로 한 이상, 사과는 국민 전체를 위해 즉시 수입했어야 합니다. 사과 농가가 반발해 정치적 문제가 되겠죠.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은 없어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2011년 경제사령탑을 지낸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 경제사에서 대표 소방수로 꼽히는 인물이다. 윤 전 장관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사과 수입 규제 유지’를 윤석열 정부 물가 대책의 실기(失期)로 평가했다. 현재의 사과 가격 강세는 지난해 생육 문제가 불거질 때부터 예견된 만큼, 사과 수입의 문을 빨리 열었다면 공급량 부족이라는 근본적 원인에 대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국내 공급이 부족해지면 해외 수입을 통해 이를 메우는 게 글로벌 경제”라며 “생산이 나빠졌을 때 빨리 수입해 가격을 안정시켰어야 했는데 정부의 결단이 늦었다”고 꼬집었다.

그가 취임 직후 겪었던 ‘배추 파동’은 현재의 금사과 사태와 닮아있다. 여름철 폭우로 산지 작황이 악화되면서 추석 직후 배추 한 포기가 만원을 넘어섰고, 농축산물을 중심으로 장바구니 물가가 뛰어오르자 민심이 들끓었다. 윤 전 장관이 이끈 이명박 정부 2기 경제팀은 중국산 배추를 직접 도입하는 방안을 택했다. 당시에도 농민과 유통인의 반발이 있었지만, 수입을 통한 공급 확대가 사실상 유일한 카드라는 판단에서였다.

윤 전 장관은 “사과를 수입하면 국내 농가가 일부 불평이 나올 수 있겠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피해 농가에 대해서는 안정기금 같은 것을 통해 별도로 적정한 지원을 해주는 등 정부로서는 균형감을 갖고 물가를 안정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고물가 상황을 극복하는 데 국민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득하는 것도 윤 전 장관이 생각하는 정부의 역할이다. 그는 “전쟁 등 해외 요인으로 인플레이션이 세계적 현상이 됐고, 선거 등 비경제적 요인으로 외부 환경도 나쁜 상황”이라며 “일본이 국민의 협조를 기반으로 장기 불황을 견뎌냈듯, 우리도 국민에게 덜 먹고 아껴 쓰며 고통을 분담해달라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긴급 가격안정자금의 무제한·무기한 투입 등 최근 정부가 펼치는 물가 대책이 직접적인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선거를 앞두고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바라봤다. 다만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칙에 반하는 일인 데다가 장기적인 효과도 ‘마이너스’(-)가 더 큰 만큼, 이런 정책은 급한 불을 끄는 데 그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 전 장관은 “정부는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간접적으로 우위에서 시장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이 될 수 있도록 그 여건을 조성하고 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선을 앞두고 물가에 매몰됐던 정부의 시각을 ‘성장’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조언도 따랐다. 윤 전 장관은 “경제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원천적인 수단은 성장률”이라며 “당장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앞에 보이는 게 물가인데, 그 뒤에 숨어 있는 저성장의 함정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이냐에 정치적 역량을 전부 투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윤증현 전 기재부장관 인터뷰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윤증현 전 기재부장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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