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S 대표님이요? 갑자기 귀국 발령이 나서 본사로 들어가셨습니다. 원인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더 묻지 말아주십시오”
2000년대 초반, 현대자동차의 일본 시장 도전 의지는 굳세고 뜨거웠다. 회사 위상과 브랜드 홍보를 위한 행사와 기자 회견이 수시로 열렸고 한일 공동 주최 월드컵 축구대회(2002년)에는 그랜저가 공식 차량으로 대거 투입돼 일본 소비자들의 귀와 눈을 붙잡았다. 하지만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연간 수만대를 팔겠다던 판매 전선엔 냉기가 가득했고 도쿄 시내를 굴러다니는 현대차를 목격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주재원들의 얼굴이 갈수록 어두워지더니 법인장 문책과 사무실의 외곽 축소 이전 이야기가 취재 안테나에 잡혔다. 급기야는 국제 행사의 연설 펑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는 하소연까지 한 주재원으로부터 듣게 됐다. 현대차가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던 일본 시장에서 받은 냉대와 고위층의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증거다.
고백하자면 기자가 현대차의 밝은 미래를 반신반의했던 이유의 큰 줄기는 ‘툭하면’ 발목을 잡는 강성 노조와 고위층의 예측 불가능한 제왕적 리더십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모습에서는 이러한 흔적을 찾기 힘들다. 세계 자동차업계가 “위기 때마다 글로벌 위상이 격상되는 회사”라고 현대차의 변신을 추켜세우고 정의선 회장을 “업계 전체에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대목에서는 뿌듯함마저 느낄 정도다.
‘변신’이라는 토양에서 더 큰 수확을 거두려면 현대차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더 정확히 읽고 유혹의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안 된다. 변심을 이끌 확실한 미끼를 던져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시장의 철문이 활짝 열릴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일본에선 토요타 등 토종 메이커들의 견제와 반격이 거세질 것이 분명한 지금 현대차는 진짜 시험대에 올라 있다. 더 큰 점프냐, 역주행이냐를 가를 기로다. 과거와 다른 점 하나는 현대차의 대응에 한국경제의 내일도 달려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