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경기 수원시 인계동에 마련된 ‘광교 호반베르디움 6차’ 모델하우스. 광교신도시에 처음 들어서는 10년 공공임대 아파트의 견본주택으로, 모델하우스 한쪽 상담석에서 청약 문의를 하자 상담사는 일반 분양 홍보 책자 외에 종이 한 장을 슬쩍 더 꺼내 보였다. ‘매매 예약 안내문’이다.
현행법상 5·10년 공공임대 아파트는 임대의무기간의 절반이 지나야 분양 전환할 수 있다. 2017년 입주하는 이 단지는 2022년에나 분양 전환이 가능하다. 분양가는 10년 공공임대의 경우 전환 시점에 2개 감정평가 기관이 평가한 감정가의 평균(전용면적 85㎡ 초과는 자율)으로 정한다. 그때 시세를 반영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상담사는 “7년 뒤 분양가를 지금 확정해서 미리 낼 수 있다”며 “매매 예약을 택하면 앞으로 월세는 한 푼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 같은 ‘선물·옵션’ 시스템을 도입한 공공임대 아파트가 다시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조기 분양 전환이 가능한 임대주택 수요자와 공급자가 미래의 집값을 현시점에서 결정해 놓고 소유권 이전을 사전에 확정하는 방식이다.
7년 뒤 집값 미리 지급…임대야 분양이야?
예를 들어 전용 101㎡형 청약 당첨자가 매매 예약을 하면 기존 임대보증금(4억 4897만원)의 30% 수준인 매매 예약금 1억 3423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계약금 1360만원을 선납하고 중도금 4020만원을 나누어 내다가 입주 때 잔금 6710만원, 분양 전환 시에는 1333만원을 지급하면 된다. 대신 입주자가 내야 하는 월세 63만원은 통째로 깎아준다. 매매 예약금 전액을 대출받아도 이자가 연 5% 이하면 월세 내는 것보다 월 7만원 정도 이익이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사업지 용적률(건물의 전체 바닥 면적 대비 땅 면적 비율)이 일반 아파트의 절반인 100%에 불과해 가구 수가 적다보니 임대료도 저렴하게 책정하기 어려웠다”며 “수요자를 위해 월세를 없애고 현 시세 수준에 집을 미리 분양받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아파트 전용 101㎡형 임대료는 보증금 2억 2449만원에 월세 97원, 월세를 일부 보증금으로 전환할 경우 보증금 4억 4897만원에 월 63만원으로 고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청약 성적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의미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광교신도시 아파트에 억대 프리미엄(웃돈)이 붙는 등 시장이 살아나자 조기에 투자자금을 회수하려는 목적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무리한 투자 삼가고 임대제도 보완해야”
문제는 7년 뒤 집값이다. 전용 85㎡형은 확정 분양가가 7년 뒤 시세보다 비싸면 업체가 그 차액을 돌려준다. 현행법상 전용 85㎡ 이하 주택의 분양 전환 가격은 전환 시점의 감정가를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대사업자 자율로 분양가를 정하는 전용 85㎡ 초과는 다르다. 주변 시세가 하락해 매매 예약을 해지하려면 예약금 10%를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 감면받은 월세도 전액 토해내야 한다.
시행사 자금력이 취약할 경우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임대보증금은 법으로 보증 상품 가입을 의무화해 보호를 받지만 매매 예약금은 아파트 준공 후 가등기를 통해 지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준공 전 시행사가 부도·파산하거나 가등기한 집에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됐다면 소유권 이전 문제를 놓고 법적 다툼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무늬만 임대’인 이런 아파트가 주거 복지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한 주택 정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매매 예약제는 편법으로 제도의 허점을 피해 가는 사실상의 분양이나 마찬가지”라며 “공공성을 확보한 임대주택 공급을 위해 제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선물·옵션처럼 거래 계약을 해도 임대의무기간 동안 아파트 소유권을 이전하지만 않는다면 임대주택법상 문제는 없다”면서도 “이런 사례가 늘어난다면 제도 보완이 필요한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