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특급…'분양형 호텔' 홍보 과열에 제동

분양형 호텔, 미 유명 브랜드 남용
지방서 분양 중인 시행사 3곳
윈덤사 '라마다' 등 앞세워 분양·판촉 과열 경쟁
윈덤 "광고 금지 계약 위반..부도 땐 이미지 타격" 경고
  • 등록 2014-12-05 오전 6:00:52

    수정 2014-12-07 오전 10:44:34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유명 호텔 브랜드를 내걸고 객실을 일반에 분양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른바 ‘분양형 호텔’의 과열 홍보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상표를 빌려준 모기업의 제재 때문이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경기도와 지방에서 객실을 분양 중인 K·P·S호텔 등 3곳의 시행사는 지난달 미국 기업인 윈덤으로부터 경고성 공문을 받았다. 윈덤은 ‘라마다’, ‘하워드 존슨’, ‘데이즈 인’ 등 자사 브랜드를 활용해 호텔 프랜차이즈 체인사업(가맹사업)을 하는 미국의 대형 호텔·모텔 투자 그룹이다.

△최근 유명 브랜드를 활용해 공격적인 분양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른바 ‘분양형 호텔’ 업계의 판촉 관행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 강남에서 문 연 제주도의 한 분양형 호텔 모델하우스에 투자자 등이 몰려 북적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해당 시행사들은 윈덤 측과 가맹 계약을 맺고 그동안 이 회사 브랜드를 분양 판촉에 사용해 왔다. 업체들은 이를 위해 객실당 가맹비 수백 달러씩을 내고, 호텔이 준공된 후에는 연간 운영 매출액의 4~8%를 윈덤에 로열티(브랜드 사용료)로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계약 조건이다. 계약서 상에 시행사가 호텔 준공 전에는 윈덤의 브랜드 이름과 마크를 사용할 수 없도록 못박아 놓은 것이다. 이에 따라 브랜드가 들어간 분양 광고 등 판매·마케팅 활동이 모두 금지되는 것이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호텔을 짓기 전에 객실부터 분양했다가 부도라도 나면 분양 계약자의 민원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가맹 본사의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 업체간 치열한 판촉 경쟁이 화근

업체 간 치열해진 분양 홍보 경쟁이 이번 경고를 부른 직접적인 배경이다. 최근 국내에서 윈덤 같은 브랜드를 앞세운 분양형 호텔 사업장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브랜드 남용 사례와 경쟁사 제보 등이 급증한 것이다.

올해 들어 제주도에서만 분양형 호텔 19건(총 5498실)이 건축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7건(1645실)보다 171% 늘어난 규모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윈덤 브랜드를 달고 객실을 분양 중이거나 분양을 앞둔 사업장도 14곳에 이른다. S호텔 시행사 관계자는 “계약에 위배된다는 점을 알지만 분양성을 높이려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윈덤 브랜드가 들어간 인터넷 광고 등을 정리 중”이라고 말했다.

△윈덤과 가맹 계약을 맺고 분양 중이거나 분양을 앞둔 전국의 호텔 사업장
당장 윈덤이 시정 요구 외에 손해 배상 등 구체적인 제재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니다. 해당 시행사들은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분양 홍보업체 관계자는 “체인점이 많아질수록 본사 수익이 늘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아진다”며 “서로에게 이익인데 제재만 앞세울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계약을 어기면서까지 외국 유명 브랜드를 활용해 도를 넘은 분양 판촉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따가운 시선에도 할 말이 있다. 예컨대 맥도날드나 카페베네 가맹점주가 본사에 정당한 비용을 치르고 사전 홍보를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논리다.

분양 따로, 운영 따로… “시행사가 호텔 준공 후에도 책임져야”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난 분양형 호텔 업계의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고 말한다. 통상 분양형 호텔의 경우 개발 시행사가 호텔 운영이 아닌 분양을 통해 수익을 얻은 뒤 사업에서 발을 빼는 구조다. 애초에 외국계 호텔기업과 가맹 계약을 맺는 목적이 객실을 잘 파는 데 있을 뿐, 장기적인 운영과 품질 관리에는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유명 브랜드를 사용하는 분양형 호텔업과 일반 가맹업을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세계적인 유명 호텔 이름을 내건 분양형 호텔업체 상당수가 향후 실질적인 객실 운영은 자본력이 떨어지는 중소업체(위탁 운영업체)에 전적으로 맡겨둔 상황이다. 윈덤 같은 가맹 사업자 역할은 초기 호텔 설계에 관여하고 운영 노하우를 전달하는 정도에 그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시행사가 브랜드를 활용해 분양에만 열을 올리고 운영은 영세업체에 떠넘기면 분양 계약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호텔 준공 후에도 시행사가 일정기간 동안 사업을 책임지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브랜드 의존도가 높아진 분양형 호텔의 관리를 강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서용건 제주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관광진흥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등급을 심사하는 관광호텔과 달리 일반 숙박시설인 분양형 호텔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건설사가 아파트를 짓고 팔면 손을 떼듯 껍데기만 유명 호텔이 되는 폐단을 막기 위해 의무 심사제 도입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제도 보완을 검토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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