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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을 뜻하는 ‘이상향’은 동양의 화가들이 오랫동안 선호한 소재였다. 권력암투와 재해, 전쟁 등이 끊이지 않는 인간사의 부침 속에서도 세상을 조율하거나 다스리고 싶었던 지식인들의 열망은 이상향을 담은 산수화로 표출됐다. ‘산수’는 동아시아 문화 속에서 높고 이상적인 정신세계를 상징하고 인간 호연지기와 함께 덕을 기르고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장소로 인식됐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눈에 보이는 풍경 외에 당대 지식계층이 바랐던 이상향을 산수화로 그리는 전통이 이어져왔던 이유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산수화 속 이상향의 모습을 찾아보는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 전을 9월 28일까지 연다. 전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유춘 이인문(1745∼1821)의 ‘강산무진도’를 비롯해 삼성미술관 리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중국 상하이박물관, 일본 교토국립박물관 등 국내외 주요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명품 산수화 총 109점이 출품됐다. 이 중 중국과 일본의 명작 42점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역시 ‘강산무진도’다. 비단 바탕에 그려진 수묵담채화로 가로 856㎝ 세로 44㎝ 크기의 대작이다. 현재 전해지는 조선후기 회화 중 가장 큰 그림으로 추정되고 있다. 4계절의 전개와 더불어 기암절벽과 강물이 어우러진 대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다양하고 화면구성이 입체적인 작품으로 추사 김정희가 소장했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우리 선조들이 꿈꿨던 이상향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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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소장한 하규의 ‘산시청람’과 중국 명나라의 대표화가인 문징명의 ‘소상팔경도’를 비롯해 조선 후기 겸재 정선(1676~1759)의 ‘장동팔경도’, 일본 무로마치시대의 소아미가 그린 ‘소상팔경도’는 산수화를 통해 이상향을 표현하고자 했던 동양 3국의 차이점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소상팔경’은 중국 호남성 동정호 일대의 빼어난 경관을 여덟 곳으로 나눠 그린 그림으로, 이상적인 경치를 표현한 산수화의 상징이 됐다. 조선 중기 정철의 관동별곡 등으로 알려진 관동팔경 등 이른바 ‘8경문화’는 여기서 비롯됐다.
이외에도 이상범과 백남순 등 한국 근·현대화가들이 그린 이상향도 선보인다. 특히 한국적 추상화를 확립한 장욱진(1918~1990)의 ‘풍경’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7세기 백제시대 ‘산수문전’부터 1980년대 장욱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산수화를 엄선했다”며 “화가들이 마음의 눈으로 본 이상향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과연 현대인들이 꿈꾸는 이상향은 어떤 곳인지를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2077-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