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2억270만원 대 4130만원.
메르세데스-벤츠 SL63 AMG와 B200 CDI의 가격이다. 같은 벤츠지만 성능과 성격, 가격 모두 ‘극과 극’이다. SL63 AMG는 국내 판매 중인 벤츠 중에서 S클래스, G클래스 상위 모델에 이어 네 번째로 비싼 초고성능 컨버터블 스포츠카이고, B200 CDI는 A클래스 기본형에 이어 세 번째로 가격이 낮은 소형 다목적 차(MPV)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비슷한 시기에 두 차종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128년 역사의 세계 최고(最古) 자동차 벤츠는 단순한 자동차 브랜드의 범주를 넘어선 일종의 상징이다. 그만큼 마니아층도 어느 브랜드보다 탄탄하다. 벤츠를 탄 사람은 대개 이유를 불문하고 또 다른 벤츠를 탄다. 비결이 뭘까. 평소 접하기 어려운 벤츠의 ‘드림 카’부터, 벤츠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엔트리 카’를 타보며 답을 찾아봤다.
| 메르세데스-벤츠 SL63 AMG 주행 모습.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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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소리부터 다르다’ SL63 AMG‘그르렁.’ 엑셀 페달을 힘껏 밟자 저며오는 듯한 엔진음이 들렸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자동차가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모든 화면은 운전자의 뒤로 멀어진다.
벤츠의 고성능 2인승 로드스터 SL63 AMG의 첫인상이다. 단순히 천장만 열리는 컨버터블이 아니다. 벤츠의 고성능 모델을 뜻하는 AMG 모델이다. 처음 들어보는 강력한 엔진음에 기가 죽어 이 차에 대해 이 이상 분석하는 건 무의미하지 않겠냐는 생각마저 든다.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다시 차를 살펴본다. 길고 강인한 앞 차체, 날렵한 전체 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멋지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4.3초 걸린다고 한다. 최고 시속은 300㎞로 제한돼 있다. 배기량 5.5리터 8기통 트윈터보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7단 자동변속기(후륜구동)이 조합을 이룬다. 최고출력 537마력, 최대토크 81.6㎏·m. 차체 전체가 알루미늄으로 돼 있다.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경춘선을 타고 돌아오는 약 60㎞ 시승 코스, 서킷이 아닌 게 아쉽다.
| 메르세데스-벤츠 SL63 AMG 기어박스 밑 주행 모드 설정 버튼.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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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보통의 벤츠와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고성능 모델인 만큼 주행모드 선택 키도 통상적인 S(스포트), S+(스포트플러스)에 RS란 게 있다. 서킷 주행을 위해 차체자세제어 시스템(ESP)을 해제하는 버튼도 있다. ESP는 일반적인 주행 때 사고를 막기 위해 네 바퀴의 힘을 적절히 배분, 운전자의 제어력을 유지해주는 장치다. 스포츠 시트는 몸을 단단히 받쳐준다.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니 시트의 왼쪽 부분이 튀어나와 운전자의 쏠림을 막아준다.
어디까지나 드림 카이자 서브(sub) 카다. 실용적이라고 할 순 없다. 2인승이고, 운전·보조석도 공간의 한계로 끝까지 펼쳐지지 않는다. 트렁크도 하드톱을 열었을 땐 백팩 1~2개 정도 싣는 게 전부다. 성능대비 효율성은 좋은 편이지만 7.8㎞/ℓ의 복합연비는 보통 사람에게는 부담이다. 게다가 고급 유를 넣어야 한다.
자동차도 일단 2억원이 넘으면 경쟁 모델을 꼽기가 모호하다. 보통 사람 이상의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이 돈으로 차를 살지, 부동산을 살지, 요트를 살지는 오롯이 소비자의 마음에 달렸다. 지난해 이 차를 산 사람은 41명이다. 다만, 한번쯤 이 차를 타고 훌쩍 동해안으로 달려보고 싶다. 장소를 서킷으로 옮겨 이 차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 보고 싶다.
참고로 SL63 AMG는 SL클래스의 6번째 모델이다. 300SL부터 시작하면 그 역사는 60여 년이다.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지난달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연 ‘드림카즈 나이트 드라이브(Dreamcars Night Drive)’ 행사에서 SL63 AMG가 입구를 나서고 있다.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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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세데스-벤츠 SL63 AMG 주행 실내모습.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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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세데스-벤츠의 2인승 로드스터 SL63 AMG. 벤츠코리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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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벤츠는 벤츠다’ B200 CDI요샌 3000만원대 A클래스도 국내에 판매하고 있지만, B클래스가 더 오랜 벤츠의 엔트리 카다. ‘마이비’란 애칭으로 1세대 모델이 국내에 소개된 지도 7~8년 됐다.
단순한 소형 MPV이지만 벤츠는 어디까지나 벤츠다. 앞 라디에이터 그릴부터 실내까지 S클래스와 같은 패밀리 룩이다. 활용성에선 MPV인 B클래스가 오히려 나은 측면이 있다. 소형이지만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은 꽤 넓다. 편리한 한국형 내비게이션이 탑재됐다.
복합연비도 15.7㎞/ℓ(도심 13.9, 고속 18.5)로 앞선 SL63 AMG의 2배다. 막히는 서울 도심과 분당을 147㎞ 오가며 측정해 본 결과 실연비는 약 12.3㎞/ℓ이었다.
최고출력은 136마력, 최대토크는 30.6㎏·m. 배기량 1.8리터 디젤 직분사 엔진과 7단 자동변속기(전륜구동)가 조합을 이룬다. 일상 주행 때의 가속력은 만족스러운 수준이지만, 당연히 달리기 위한 차는 아니다.
엔트리 카라고 ‘깡통 차’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내 출시 모델은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파노라마 선루프도 갖췄다.
| 메르세데스-벤츠 B클래스 실내등.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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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세데스-벤츠 B클래스 실내등.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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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다운 섬세함도 살아 있다. 예를 들어 실내등. 보통은 밝거나 어둡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B클래스는 조금 다르다. 빛의 전개 각도가 교묘하게 돼 있어, 켜면 밝지만 두드러지지 않는다. 운전자의 눈부심까지 배려한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이 맞는다면, 이 차는 매사에 이런 식으로 보이지 않는 배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이제는 중·대형 세단이 필요 없는 은퇴자, 실용성을 포기할 수 없는 벤츠 마니아에게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젊은 벤츠 입문자에게는 A클래스나 CLA클래스, 이달 출시한 뉴 C클래스, 내달 출시하는 GLA까지 선택 폭이 너무 넓어졌다. 경쟁 모델은 같은 가격대의 중대형 세단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BMW 2시리즈, 아우디 A3, 렉서스 IS 같은 4000만원 전후의 고급 수입 소형차를 꼽을 수 있다.
| 메르세데스-벤츠 B클래스.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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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세데스-벤츠 B클래스 앞좌석.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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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세데스-벤츠 B클래스 뒷좌석.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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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세데스-벤츠 B클래스 트렁크.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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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세데스-벤츠 B클래스 파노라마 선루프. 김형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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