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다주택자를 위한 변명

  • 등록 2014-04-21 오전 7:10:00

    수정 2014-04-21 오전 7:10:00

[이데일리 조철현 사회부동산부 부장] 지난 2005년 여름 TV로 방영된 공익광고의 한 장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중환자가 산소 마스크를 쓴 채 침대에 누워 있다. 심각한 표정을 짓던 의사들이 “이 병의 특징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며 ‘부동산 투기’ 진단을 내린다. 집을 여러 채 소유한 다주택자는 나라를 병들게 하는 병균과 다름없다는 암시다. 광고는 ‘집에 대한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희망을 만든다’라는 멘트로 끝을 맺는다. 당시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정책을 폈다.

우리나라에서 다주택자는 괴롭다. 작은 집을 두 채 갖고 있어도 투기꾼 취급을 받기 일쑤다. 다주택자에게 덧씌워진 굴레가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집을 두 채 이상 가지면 취득세 중과, 양도소득세 부과, 양도세 장기특별공제 차등 적용, 소득공제 적용 배제, 종합부동산세 공제 배제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렇다 보니 경제 논리로 볼 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2억원짜리 주택 두채를 보유한 사람이 한채를 팔아 5000만원의 양도 차익을 얻었다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9억원짜리 집 한채를 소유한 1주택자는 이 집을 팔아 5억원의 양도 차익을 챙겨도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다. 경제 논리로 보면 양도 차익이 크고 보유기간이 짧을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종합부동산세도 다주택자를 옥죄는 차별 과세다. 다주택자는 보유 주택 총액이 6억원을 넘으면 종부세를 내야 한다. 1주택자가 9억원을 넘어야 종부세를 내는 것과 비교하면 징벌적 과세다.

다주택자에 대한 족쇄는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얼마 전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임대 소득 과세 방침도 그렇다. 1주택자의 집이 공시가격 9억원(실거래 12억~13억원)을 넘지 않으면 임대소득이 아무리 많아도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 반면 2주택자에게는 월세 소득 뿐 아니라 전세에 대한 간주임대료도 매길 예정이다. 자산 규모는 비슷한데 넓은집에서 여유롭게 사는 사람보다 좁은 집에 살면서 다른 한채를 세놓은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이 모든 게 1가구 1주택 정책 때문이다. 1가구 1주택 패러다임은 고도 성장기 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주택이 만성적으로 부족하던 시절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제 주택시장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어섰다. 부동산 불패 신화도 깨졌다.

다주택자도 변하고 있다. 시세 차익을 노리겠다는 사람보다 저금리에 이자소득이 줄어들자 임대소득을 겨냥해 다주택자로 변신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체 1806만가구 중에서 공공임대 90만가구 등 제도권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가구는 148만7000가구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자가 거주를 빼면 전세나 월세를 사는 임차가구의 81%(630만가구)가 주로 다주택자가 내놓은 전·월셋집에 살고 있다.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던 다주택자들이 민간 임대주택 공급자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다주택자에 대한 정책도 바꿔야 한다. 다주택자에 대해 징벌적 과세를 부과하는 현재의 정책 시스템으로는 임대주택 공급시장이 활성화될 수 없다. 이사철마다 발생하는 전세난도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과도한 세금 부과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 선진화’보다는 ‘정책 선진화’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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