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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사실에 따르면 2021년 5월 16일 서울시 종로구 한 매장 안에서 피해자가 물건 구입 후 매장 바닥에 떨어뜨린 지갑(운전면허증 1매, 주민등록증 1매, 우체국체크카드 1매, 현금 5만원권 1매가 들어 있는 시가 미상의 남성용 반지갑)을 매장 주인이 습득해 옆에 있던 피고인 A씨에게 “이 지갑이 선생님 지갑이 맞느냐”고 묻자 “내 것이 맞다”라고 말하면서 마치 자신의 지갑인 양 매장 주인이 건네주는 지갑을 건네받은 뒤 그대로 가지고 가 피해자의 지갑을 절취했다.
피고인 A씨는 매장 주인이 건네주는 피해자의 지갑을 자신의 지갑으로 오인해 가지고 갔고, 자신의 지갑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를 반환하고자 우체통에 넣었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의 지갑에 현금이 있었는지 여부도 알지 못하고 그 돈을 사용한 사실도 없다는 취지로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1심은 A씨의 절도죄가 인정된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지갑은 평소 몸에 지니고 수시로 사용하는데다가, 매장 주인이 피고인에게 피해자의 지갑이 피고인의 것인지 물었을 때 피고인은 이미 우산값 계산을 마친 뒤 자신의 지갑을 가방에 집어넣은 상태였다”며 “피해자의 지갑은 ‘검정색 민무늬 지갑’인 반면 피고인의 지갑은 ‘대각선 체크 격자무늬의 엠보싱이 있는 검정색 지갑’ 또는 ‘갈색 민무늬 지갑’이어서 서로 색깔이나 외형상 차이가 크므로 피해자의 지갑을 자신의 지갑으로 오인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후 검사는 원심이 유죄로 판단한 절도에 관한 공소사실을 주위적 공소사실로 유지하면서, 예비적으로 죄명에 ‘사기’를 추가하는 취지의 공소장변경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허가했다.
2심도 벌금 50만원 처분을 내렸지만 절도죄는 무죄, 사기죄를 유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매장에 두고 온 반지갑은 매장 주인의 점유에 속한다고 봐야 하고, 피고인이 피고인을 지갑의 소유자라고 착각한 매장 주인의 행위를 이용해 그 지갑을 취득한 이상 이를 두고 피고인이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피고인의 이 사건 당시 행위를 피해자의 재물을 절취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2심 판결을 수긍하고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매장 주인은 반지갑을 습득해 이를 진정한 소유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지위에 있었으므로 피해자를 위해 이를 처분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며 “매장 주인은 이러한 처분 지위에 기초해 반지갑의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피고인에게 반지갑을 교부했고 이를 통해 피고인이 반지갑을 취득, 자유로운 처분이 가능한 상태가 됐으므로 이는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관리자가 있는 매장 등 장소에서 고객 등이 분실한 물건을 관리자가 보관하는 상태에서 그 관리자를 속여 분실물을 가져간 행위는 절도죄가 아니라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