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로 공정위 송무가 강해질까[현장에서]

공정위, 사료 소송 패소로 거액의 환급가산금 지급
무리한 처분 문제지만 공정위 송무 예산 부족
재판 중 경제분석…고액 자문료 주는 로펌에 몰려
예산 증액 없이 송무 대응 강화만 주문한 국회
  • 등록 2022-06-23 오전 5:40:01

    수정 2022-06-23 오전 7:28:07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연이은 소송 패소를 두고 비판이 크다. 공정위는 사익편취 조항 첫 적용사례였던 대한항공 사건에 이어 최근 배합사료 담합 소송까지 연달아 패소했다. 특히 전체 과징금 액수가 773억원에 달했던 사료 소송의 경우 거액의 환급가산금을 더해 돌려줘야 한다. 142억원의 과징금을 냈던 하림 계열사에 공정위가 지급해야 하는 지연이자 성격의 환급가산금만 약 16억원 수준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사진=연합뉴스)


문제의 발단은 공정위의 무리한 처분일 테다. 하지만 무리한 처분만을 비판하기에는 공정위 송무 능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 선임 관련 예산이 턱없이 적다.

올해 책정된 공정위의 변호사 선임 관련 예산은 약 29억원으로 지난해와 동일하다. 다수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공정위가 사건당 변호사에게 지급하는 수임료는 500만~1000만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규정상 3000만원까지 지급할 수 있으나 예산의 한계로 최대 금액을 집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 큰 문제는 소송이 길어질 때다. 공정위는 시간에 따라 돈을 지급하는 ‘타임차지’ 방식이 아닌 사건별로 변호사와 계약을 맺는다. 복잡하거나 쟁점이 많아 다수의 재판이 열리는 사건도 비용을 추가 지급하지 않는다. 사건이 복잡하고 길어질수록 공익을 앞세운 ‘열정페이’가 되는 셈이다. 사료소송의 경우 6년이 걸렸다.

이 때문에 공정위를 대리하는 변호사 다수는 초창기 경력을 쌓기 위해 수임했다가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기업 대리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거래사건에 흥미를 느꼈던 변호사들도 몇 번 사건을 경험하고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잦다. 원활한 송무대응을 위해 필요한 ‘변호인 풀’을 구성하기 어려운 이유다.

재판과정에서 필요한 경제분석은 더 큰 문제다. 공정거래 사건의 핵심 논거를 만드는 경제분석은 경제학과 교수 등에게 의뢰하는데, 우수한 학자들은 대부분 거액을 지급하는 대형로펌 자문을 맡는다고 한다.

2020년 경제분석 예산을 5000만원으로 책정했던 공정위는 예산 부족으로 다른 항목에서 끌어와 사용한 적도 있다. 올해도 관련 예산은 1억원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공정위 대리 경제분석 자문료와 대형로펌 자문료가 100분의 1 차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아무리 공익으로 설득해도 더 많은 보수를 주는 쪽을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고 한다.

반대 편에 선 대형 로펌의 대응은 거세다. 다수의 변호사가 붙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들이 내는 다양한 의견에 공정위를 대리하는 1~2명의 변호사가 대응하기 쉽지 않다. 또 다양한 자원이 있는 대형로펌은 자료조사·법률검토·자문이 내부에서 동시에 진행될 수 있으나 공정위를 대리하는 변호사는 대부분 이를 홀로 한다.

국회는 올해 예산을 심사하며 “삼성 소속 계열사 급식몰아주기 관련 2349억원의 과징금 환급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며 “행정소송 대응을 위한 소송지원 역량을 강화하라”고 주문했으나, 예산은 그대로다. 공짜로 송무가 강해질 리 없다. 공정위를 위해서가 아니다. 공정한 시장경제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아까운 세금이 거액의 환급가산금으로 쓰이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공정위 송무 강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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