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넓이는 한국과 비슷하고 모양은 한국을 옆으로 눕혀 놓은 것 같다.
불가리아는 1879년 오스만제국의 500년 지배로부터 독립 후 남북 분단과 통일, 1·2차 발칸 전쟁, 두 차례의 세계대전 참전, 45년 사회주의 체제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유엔연합(EU) 가입 등 숨 가쁜 현대사를 달려왔다. 19세기 말 열강의 침탈과 식민 지배, 민족 해방과 남북 분단,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여정을 달려온 우리와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불가리아가 주변 제국의 위협과 지배를 받으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해 온 원동력에는 키릴 문자를 토대로 한 독창적인 문화가 있다. 대륙과 해양의 정세가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외침을 겪으면서도 한반도에서 수천년 역사와 찬란한 문명을 이어온 우리 민족과 불굴의 정신을 공유한다.
흑해 연안국의 전략적 중요성
불가리아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중공업 분야 경제강국이었다. 그러나 동구 공산권 몰락 후 시장경제 편입 과정에서 대부분의 제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였고 지금은 낙농업과 서비스업, IT 산업 등이 근간을 유지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현재 2027년까지 배정된 약 285억 유로의 EU 기금을 활용한 인프라 개선과 친환경 에너지 산업 투자를 통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서 물류 이동과 유럽·중동 진출의 협력 파트너로서 흑해 연안국인 불가리아의 전략적 중요성이 재차 조명되고 있다. NATO와 EU 회원국인 불가리아는 인프라 확충과 제도 개선 등 친비즈니스 정책을 추진하면서 첨단기술과 자본력을 가진 한국 기업에 손짓하고 있다.
불가리아의 높은 교육열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양질의 인적자원은 유럽 내에서 인정받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영어와 제2외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IT 등 첨단 분야 인재양성에도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인건비가 주변 유럽국가에 비해 낮아 젊고 유능한 인재의 해외 유출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 지속되고 있지만, 유로존 가입과 경제 안정에 따라 인재 귀국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불가리아인은 한국의 경이로운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문화 콘텐츠에도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한국과 한국 기업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작은 걸음부터 손잡고 가보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과 불가리아가 손잡고 함께 일구어나갈 틈새시장이 눈앞에 떠오르고 있다.
불가리아는 천혜의 비옥한 땅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최고수준의 낙농업을 유지하고 있다. 불가리아의 바이오, 유기농 원재료를 한국의 첨단기술과 접목해 유럽시장에 진출한다면 팬데믹 이후 전개될 건강 우선 선진산업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불가리아는 장미·라벤더 오일의 주요 수출국인데, 우리 화장품 기업의 뛰어난 기술이 불가리아의 최고급 원재료를 만난다면 최상의 제품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한국 화장품 수입이 105%씩 증가했다. 한국은 2020년 기준 불가리아의 5위 화장품 수입국가다.
불가리아는 IT·인공지능(AI)·디지털 산업에 집중 투자 중이다. 최초의 현대식 컴퓨터 ABC(아타나소프 베리 컴퓨터) 개발자인 존 아타나소프가 불가리아계 미국인이라는데 불가리아인들은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소피아, 부르가스 등 주요 도시들은 스마트시티 첨단 산업 개발을 추진하면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과 경험을 가진 우리 지방자치단체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울산시는 불가리아의 항구도시 부르가스와 2021년 11월 23일 자매결연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는데, 울산의 제조업 경쟁력이 흑해 연안의 교통·항공·해운 물류 중심도시와 만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불가리아 경제의 1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관광업에 주목할만하다. 불가리아는 고대 유적지, 등산과 하이킹, 스키, 온천, 골프, 해안 등 다채로운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소피아, 플로브디프, 부르가스, 바르나, 벨리코터르노보 등 불가리아를 일주하는 관광상품은 한국인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이스탄불, 루마니아, 북마케도니아 등 인근 국가와 패키지 상품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위드코로나 시대 불가리아가 제2의 크로아티아가 되어 동유럽 관광 붐의 중심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작지만 구체적인 걸음을 디뎌나가면 발칸반도와 한반도의 공동번영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먼 옛날 중앙아시아 초원 한켠에서 말 달리며 스쳐 지났을지 모를 한국인과 불가리아인이 미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손잡고 달려가는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