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고소”… 소송전으로 얼룩진 식품업계

오비맥주 “자사 판촉물 무단 철거자, 하이트진로 차량 사용”
하이트진로, 오비맥주도 판촉물 무단 철거 ‘맞불’
bhc, BBQ의 자회사 불법 대여 혐의로 고발 조치
전문가 "준법경영 중시 시대, 소비자 반감만 커질 것"
  • 등록 2021-05-07 오전 5:30:00

    수정 2021-05-07 오후 1:21:31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식품업계에서 잇따라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업계 내 경쟁이 격화하다 보니 단순히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넘어 상대방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까지 불사하는 모양새다.

오비맥주는 하이트진로와 서로 판촉행사를 방해했다며 날을 세우고 있고, bhc는 자사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안이 아님에도 BBQ를 고발 조치하는 등 갈등 수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로고(사진=각 사)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비맥주는 하이트진로를 영업방해, 절도 등 혐의로 고소·고발을 검토 중이다. 오비맥주에 따르면 최근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부근 상권에서 신제품 ‘한맥’ 홍보물이 5번에 걸쳐 분실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비맥주는 이 사건을 관할인 성남중원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성남중원경찰서의 중간 수사 결과 홍보물을 무단 수거해 간 차량은 하이트진로 법인 차량으로 확인됐다. 오비맥주는 하이트진로 법인 차량을 이용해 한맥 홍보물을 무단 수거해 간 인물이 하이트진로 직원일 경우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9일 오전 7시께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경기도 성남시의 한 식당 앞에 승합차량을 세운 뒤 오비맥주 ‘한맥’ 홍보물을 무단으로 수거해 차량 뒤쪽 트렁크에 싣는 장면이 찍힌 CC(폐쇄회로)TV의 일부. (사진=오비맥주 제공)
◇오비맥주 “옥외광고물 훼손했다”…하이트진로와 날 선 공방


이에 대해 하이트진로도 반격에 나섰다. 하이트진로는 오비맥주 직원이 자사 홍보물을 무단으로 훼손하고 그 자리에 한맥 홍보물을 붙였다고 주장했다. 하이트진로는 인천, 안양 범계 등에서 한맥 유니폼을 입은 한 남성이 하이트진로의 ‘진로’ 포스터를 뜯어내고 한맥 홍보물을 붙이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 또한 자료를 취합한 뒤 관할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양사는 서로 자신만의 논리로 상대를 압박하고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하이트진로 측의 판촉물을 떼어낸 것은 업주의 허락을 받아 이뤄진 일”이라면서 “이를 문제 삼는 건 옳지 않다”라고 했다. 하이트진로 측은 “업주의 허락을 받았더라도 해당 판촉물은 하이트진로의 자산이므로 오비맥주가 함부로 떼어내선 안 된다”고 맞섰다.

지난달 30일 인천 관교동에서 오비맥주 직원이 하이트진로의 홍보물을 뜯어내는 영상의 일부.(사진=하이트진로)
최근 양사의 날 선 대립은 하이트진로가 밀고 있는 맥주 ‘테라’의 성장세와 더불어 오는 7월부터 ‘실외 술광고’가 전면 금지되는 상황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테라는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9년 대비 판매량이 78% 증가했다. 지난해 주류 시장을 선도했던 가정 시장에서 23% 이상 신장세를 기록한 것은 물론 위축된 유흥시장에서도 유흥용 중병(500㎖)의 판매가 약 25% 늘었다.

오비맥주는 여전히 맥주 시장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하이트진로의 신장세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오비맥주는 올해에만 한맥과 ‘올 뉴 카스’ 등 신제품과 리뉴얼(새 단장) 제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소비자 이목 잡기에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7월 주류 옥외 광고가 어려워지면서 포스터나 입간판 등 옥외 판촉물 훼손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주류업계 영업 일선에서 판촉물 경쟁은 쉽게 벌어지곤 했다”라면서 “다만 보통 소송을 하더라도 상대는 경쟁 법인이 아니라 포스터나 입간판을 훼손한 영업사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적당히 합의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갈등이 양사의 전면적인 소송전으로 이어질 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BBQ와 bhc의 로고(사진=각 사)


“잘못된 경영 관행 경종며 고발… BBQ·bhc 소송전, 감정싸움으로까지 변질

앙숙인 BBQ와 bhc 또한 잇따른 소송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최근 bhc는 BBQ가 자회사에 자금을 불법 대여를 했다는 이유로 고발했고 이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BBQ 측은 자사가 피해를 본 상황이 아님에도 BBQ의 이미지 실추를 목적으로 고발을 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bhc는 지난달 20일 윤홍근 BBQ 회장 외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 혐의로 성남수정경찰서에 고발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bhc는 고발장에 윤 회장이 제너시스와 비비큐의 대표이사로서 BBQ와 관련이 없는 다단계 회사인 지엔에스하이넷에 자금을 대여하도록 했다고 적었다.

당시 bhc는 “윤 회장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회사에 수십억 원을 부당하게 대여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라면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해 엄정한 조사로 잘못된 오너십과 경영 관행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수사를 의뢰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BBQ는 “경쟁사의 악의적인 모함에 대해 민형사상 모든 조치를 동원해 단호히 대응해나갈 것”이라면서 현재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bhc와 BBQ는 현재 연이은 소송전을 벌이며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박현종 bhc 회장은 2015년 7월 bhc 본사 사무실에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도용해 BBQ 내부 전산망에 접속한 혐의로 현재 동부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양사는 물류 및 상품공급 계약 해지 관련 민사 소송도 진행 중이다. 1심 법원은 bhc 손을 들어줬고 BBQ가 항소한 상태다.

갈등의 근원은 양사의 태생적 한계에 기인한 바가 크다. 윤홍근 제너시스 비비큐 회장은 박현종 bhc 회장을 BBQ로 스카우트했고, 박 회장은 BBQ 시절 bhc 매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이후 bhc가 매각되면서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bhc를 인수한 사모펀드는 “가맹점 수를 부풀렸다”며 BBQ를 상대로 소송해 96억원을 배상받았다.

전문가들은 경쟁사 간 법적 대응이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들의 신망을 잃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진단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송전은 상호 간 법적, 윤리적 경영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 없다”라면서 “서로 준법경영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소송전을 벌이는 두 업체 모두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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