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구상은 기존의 가상화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트코인이 중심이 된 첫 번째 가상화폐는 ‘저걸 도대체 어디에 사용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에 대해 답을 내놓지 못했다. 실시간으로 비용 없이 해외 송금을 할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그게 그다지 큰 부분은 아니었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현재 은행 시스템 안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미국의 일부 커피점에서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있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지금 존재하는 돈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왜 굳이 가상화폐가 들어가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현재 가상화폐를 사용하는 곳이 거의 없다 보니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하기 힘들어서 나온 현상이다. 페이스북의 참여로 이 문제가 조금은 풀렸다. 페이스북 가입자가 23억명에 달해 이들 사이의 거래만으로도 상당 규모의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개념을 전파하는데 주력했던 1단계를 지나 실제 적용이 중요시되는 2단계로 발전했다.
이전에 비해 가상화폐의 현실성이 높아졌지만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중앙은행이 가상화폐를 허용해 줄지 여부다.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달러가 기축통화가 아니었다면 미국 경제는 큰 난리를 겪었을 것이다. 지금보다 회복 시기가 훨씬 늦어졌거나 최악의 경우 연속되는 위기로 미국이 다른 나라나 국제기구의 힘을 빌려야 했을 수도 있다. 금융정책은 중앙은행이 통화를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성립한다. 민간이 화폐를 마음대로 만들어 낸다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이 약해지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가상화폐에 찬성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당장에는 가상화폐가 활성화되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중앙은행이 직접 가상화폐 제조에 나설 것이다. 화폐를 다수의 손에 맡겨 놓는 불확실성보다 직접 나서 통제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 가상화폐를 허용해 줄 경우 이는 페이스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마존을 비롯해 가상화폐가 더 필요한 곳이 또 다른 화폐를 만들어낼 텐데 그만큼 중앙은행의 통제력은 약화한다.
세상이 변하면 항상 새로운 것이 나온다. 화폐도 예외가 아니다. 두 번째 단계로 들어선 가상화폐가 물건을 사고파는 수단으로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