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사범 구속율 '0.99%'…가정 못 지키는 가정폭력특별법

가정폭력사범 한해 4만명 검거..3년 6개월간 16.4만명
5년내 재범률 2015년 4.1%서 올해 8.9%로 2배 급증
유엔 여성차별철폐위 "피해자 안정보장 위주로 개정하라"
  • 등록 2018-10-30 오전 1:00:00

    수정 2018-10-30 오전 1:00:00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지난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지난 22일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모(47·여)씨가 전 남편인 김모(48)씨가 휘두른 흉기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직후 이씨의 딸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아빠를 사형시켜달라”는 청원을 올리면서 이씨가 김씨로부터 긴 세월 가정폭력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씨가 고통 속에서 세월을 보내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국가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가정폭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가정폭력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정폭력사범 한해 4만여명 검거

25년. 전 남편 김씨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기전까지 이씨가 고통받은 시간이다.

지난 1993년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직후버터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이씨는 지난 2015년 김씨와 이혼했다. 김씨가 친구들과 제주도에 다녀온 이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사건 직후였다. 하지만 이혼으로도 김씨의 폭력에서 벗어나는데는 실패했다.

이혼 후에도 김씨는 이씨의 차량에 위치추적장치 GPS를 설치해 미행하고 가발을 쓰고 접근하는 등으로 지속적으로 이씨를 찾아와 “죽이겠다”고 위협했고 결국 실천에 옮겼다.

가정폭력은 한국사회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지난 6월까지 가정폭력으로 16만4020명이 검거됐다. 한해 4만명이 넘는다. 여성 피해자가 75%다.

가정폭력 재범률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15년 4.1%였던 재범률은 올들어(6월 기준) 8.9%로 두배 이상 높아졌다. 가정폭력 재범은 가정폭력 사범 중 과거 5년 이내에 가정폭력으로 기소유예 이상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는 경우를 뜻한다.

재범률이 높아진 배경에는 솜방망이 처벌이 한몫하고 있다. 가정폭력 사범이 구속수사를 받는 경우는 총 검거인원 16만 4020명 중 1632명으로 0.99%에 그쳤다. 강서구 주차장 살인 사건 피의자 김씨 역시 2015년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검거한 가정폭력 사범이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 검거한 피의자 중 35.2%(5만7728명)는 형사사건으로 검찰에 기소되지 않고 ‘가정보호사건’으로 법원에 송치됐다. 가정보호 사건으로 처리되면 형법이 아닌 ‘가정폭력특별법’에 따르며 형사처벌 대신 상담이나 친권행위 제한, 사회봉사 등의 처분을 받는다.
가정폭력사범 검거 및 재범률 현황.(그래픽=문승용 기자)
20년 동안 가정 지키지 못한 가정폭력특별법...“이제는 손봐야 할 때”

가정폭력 사범이 16만명에 달하고 재범률도 높아지면서 가정폭력 예방·처벌을 목적으로 제정한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폭력특별법의 제정목적이 ‘처벌’보다는 ‘가정 유지’에 편중한 탓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정폭력특별법 제 1조는 가정폭력 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사법당국은가정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가정폭력 가해자를 형사 처벌하는 대신 상담이나 사회봉사 등 가벼운 처분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이 법의 주요 목적을 피해자와 가족의 안전 보장에 두고 가해자 형사 처벌 보장과 접근금지 명령 위반 시 체포 의무 정책을 도입하도록 해당 법을 개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장윤미 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현행 가정폭력특별법은 가정 폭력을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다툼 정도로 여기고 있다”며 “가정폭력 사건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끔찍한 결과로도 이어지는 현재 가정폭력 사범을 형사 처벌해야 할 강력 범죄로 정의할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폭력 범죄 피해자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만큼 선진국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를 강력한 조치로 분리해 보호할 수 있는 ‘젠더폭력방지법’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아빠를 사형시켜 달라”는 청원을 올려 현재 13만 이상의 동의를 받고 있다.(사진=청와대 게시판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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