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칼럼] 머스크-베조스 그리고 '또라이'의 반란

  • 등록 2016-04-15 오전 3:01:01

    수정 2016-04-15 오전 3:01:01

엘론 머스크는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다. 머스크는 전기차 개발에서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오지랖이 넓었다. 그는 광활한 우주를 응시하며 2030년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지구와 화성을 우주 인터넷으로 연결하겠다는 ‘황당한’ 계획을 선보였다. 그렇다고 그가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한 것도 아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

제프 베조스도 오십보백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CEO인 베조스는 우주개발 사업에 푹 빠졌다. 우주 기업 ‘블루 오리진’을 설립한 그는 최근 우주선 발사 추진 로켓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한 번 쓰면 되찾을 수 없는 로켓을 재활용하면 우주선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머스크와 베조스를 바라보면 속된 말로 ‘또라이’도 이런 또라이가 없다. 이들은 스페인 작가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가 쓴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 돈키호테가 거대한 풍차를 마치 대적해야 할 거인으로 착각하고 무모하게 돌진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머스크가 2003년에 설립한 테슬라는 설립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쌓인 적자만 해도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에 달한다. 더욱이 테슬라는 뉴욕증시 상장기업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주주총회에서 사업 부진에 따른 경영진 퇴진의 목소리가 나올만도 하다. 그러나 13년이 넘도록 전기차 대중화에 주력해온 경영전략과 이제는 우주개발까지 용인하는 기업생태계가 테슬라를 세계적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결과물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창조혁신기업의 천국만은 아니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조달러(약 1경1542조원)가 넘는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산업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재정립하고 있다. 대기업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에서도 머스크와 베조스처럼 혁신적 기업인이 등장해 미국 경제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산업 생태계를 일궈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비해 우리 산업 생태계는 특유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사라진지 오래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그의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 일반이론’에서 소개한 야성적 충동은 동물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본능적으로 사냥을 하듯이 기업인도 사업 경험과 직관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적 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기업을 경영할 때 이성적 판단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본능에 따라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업가정신을 뜻한다.

한국경제를 일궈낸 창업 1세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반도체사업이 13년간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사업을 밀어붙여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 반도체업체로 만들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자동차 독자개발을 포기하라는 미국 정부 압력에도 불구하고 개발을 밀어붙여 현대·기아차를 세계 5위 자동차업체로 육성했다. 두 창업자가 주판알만 튕기거나 외압에 못 이겨 쉬운 길을 택했다면 오늘의 한국경제 신화는 없었을 것이다.

인공지능(AI)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시대적 화두로 등장했지만 요즘 우리 기업인들은 미래를 위한 신(新)기술 개발이나 투자는 뒷전으로 미루고 재무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된 모습이다. 또한 잊을만하면 터지는 대기업 오너가(家)의 ‘꼴불견 갑질’은 반(反)기업 정서만 부채질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의 암운이 길게 드리워진 한국경제호(號)를 살릴 수 있는 기업가정신은 언제 되살아날 수 있을까.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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