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대란 전에는 소비자들이 대출채권보다 카드 대금을 먼저 갚았다. 카드 연체이자가 비쌌던 탓에 연체를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카드대란 이후에는 상황이 바꿨다. 카드 대금 연체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들이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사회문제로 확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카드대란은 2003년 한 카드회사 부실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단초가 됐다. 카드사가 망하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판단한 연체자들이 배짱을 부리면서 연체율이 높아져 결국 카드대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앞서 5년 전인 1998년에 발생한 외환위기도 카드대란과 무관하지 않다. IMF(국제통화기금) 체제를 극복할 때 카드 규제가 풀리면서 카드 발급이 급증했다. 카드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은 미래의 부(富)를 현재에 당겨쓰는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다.
지금도 알짜 부자들은 지갑에 현찰만 넣고 다닌다고 한다. 카드를 쓰면 빚으로 생활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들이 부동산 등에 투자할 때는 적은 자기자본으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렛대 효과’를 철저하게 이용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투자하지는 않는다. 미래에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판단이 설 때만 투자한다. 가격 상승 기대치와 이자율을 꼼꼼하게 따져서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민들의 금융 생활방식은 사뭇 다르다. 이들은 신용카드를 여러 장 가지고 있고 대부분 전·월셋집에 살고 있다. 자본금도 적어서 금융권에서 차입할 수 있는 금액은 많지 않다. 결국 지렛대 효과를 활용하고 싶어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결국 정부가 서민들에게 빚을 지고 내 집을 마련하라고 주문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 2003년 한국은행이 작성하기 시작한 개인 가처분 소득 기준 가계 부채 비율은 106.7%였다. 카드사태가 수그러들면서 2004년 103.4%로 감소한 뒤 8년 연속 상승세를 탔다. 지난해 말 이 비율은 135.6%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가계 부채가 위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한국의 가계 빚은 980조원에 이른다. 가계부채 잔액은 사상 최대 수준이며, 이런 추세라면 올해 1000조원을 넘길 가능성도 크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대출금리를 낮춰주면서 빚을 내 집을 사라고 권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서민들에게 집을 사라고 금융 지원에 나서는 것보다는 집값이 정상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게 더 중요한 때라는 것을 정부는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