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글로벌 경기후퇴(recession), 진화된 디플레이션(deflation) 우려는 극심한 안전자산선호(리스크 회피) 현상을 촉발했다. 이에 따라 내년 국채 발행이 2조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막대한 물량 예고에도 불구하고 국채의 매수세가 멈출 줄을 모르는 양상이다.
빌 그로스 등 전문가들은 `제로금리는 곧 버블`이라며 우려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급격히 달아오른 만큼 `숨막히는 엑소더스`가 펼쳐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막대한 공급 예고 vs 탐욕스러운 수요
지난 9일 재무부가 실시한 300억달러 규모의 4주만기 국채 입찰에서 발행금리는 연 0%를 기록했다. 미국 국채 발행금리가 제로(0)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날 3개월물 수익률은 지난 1929년 미국이 국채 발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이번달 국채 2년물, 10년물, 30년물 수익률은 일제히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가격 사상 최고치)
이같은 국채시장의 폭발적인 랠리는 미국 재무부의 막대한 물량 예고를 뚫고 이뤄진 것이기에 더욱 놀랍다.
물량 경고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만족할 줄 모르는 형국이다. 신용손실에 따른 리스크 회피와 디플레이션 공포가 그 배경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본격화된 지난 2007년초 이래 금융기관들의 신용손실은 9840억달러에 이른다. 이로 인해 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미국과 유럽,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동시에 경기후퇴 국면에 진입했다.
유가 폭락과 더불어 물가가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경기후퇴 공포는 디플레이션 공포로 진화됐다.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사상 최대폭인 1% 급락했다. 블룸버그 통신의 집계에 따르면 11월 CPI는 이보다 더 큰 폭인 1.2% 떨어질 것으로 관측됐다.
크레디트 스위스 그룹의 아이라 저지 금리 전략가는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1년 미만의 단기 국채(Treasury bills)에 대한 수요는 탐욕스러운 수준"이라며 "디플레이션에 대한 공포와 신용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려는 막대한 현금이 국채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메릴린치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이래 30년물 국채수익률은 23.6%로 지난 1995년 이래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올들어 전체 국채의 평균 수익률은 11.9%. 같은 기간 S&P500지수 수익률이 -39%, 회사채 수익률이 -15.3%로 죽을 쑤는 동안 홀로 호황을 구가했다.
◇`제로금리는 버블`..그로스 등 잇단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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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왕`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국채 가격의 급등과 관련해 "거품 성격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채 발행금리 0%는 국채가격이 고평가 된 것"이라며 "위험대비 수익이 전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센티넬 자산운용의 데이비드 브라운리 채권 헤드는 "국채시장이 절대적인 버블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단기 국채 발행금리가 제로(0)라는 것은 `이성의 실종`"이라고 말했다.
◇`숨막히는 엑소더스` 펼쳐질수도
이코노미스트들은 내년에 경기회복 전망이 무르익게 되면 국채수익률이 반등하면서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급격한 엑소더스`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인 8조5000억달러의 유동성을 쏟아부은 만큼 대출이 살아나고 경기후퇴로 인한 타격이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을 전제로 한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의 집계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최근 2.67%에서 내년 연말 3.66%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수익률과 반대로 움직이는 국채가격이 하락하면서 3.88%의 손실이 초래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밀러 타박의 토니 크레센치 수석 채권 전략가는 "1월 중순께 투자자들이 경기회복에 초점을 두게 되면서 국채수익률이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피프스 써드 자산운용의 미첼 스테플리 수석 채권 담당자는 "일정 시점에 도달하면 정부의 유례없는 정책에 대한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며 "국채로부터의 탈출이 숨막히는 속도로 펼쳐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